[사람과 이야기] "피 흘려 지킨 나라인데… 안보현실 위태"

"그때 우린 열일곱, 열여덟 살이었어. 공포에 떨 틈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지. 곁에선 피어보지도 못한 꽃들이 붉은 피를 쏟으며 쓰러져 갔어. 하지만 우리가 물러서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생각뿐이었지."

팔순을 바라보는 노병(老兵)의 눈에 눈물이 촉촉히 맺혔다. 1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대한민국학도의용군회 사무실에서 만난 경서호(77) 회장과 세 명의 노병은 "나이 어린 학도병들이 피 흘려 지킨 대한민국인데 또 북한이 (연평도를) 도발하다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며 "지금이라도 총을 들고 전선으로 달려나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한민국학도의용군회는 지난 8월 '나라생각'이란 계간지(季刊誌)를 창간한 데 이어 겨울호(2호)를 준비하고 있었다. 잡지는 학도병들의 참전기와 국가 안보에 대한 좌담회 등을 담고 있다. 경 회장은 "팔순 언저리의 노병이 됐지만 대한민국의 안보 현실이 너무나 위태롭다는 생각에 잡지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잡지 이름도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노병들의 우국충정을 담아 '나라생각'이라고 지었다.

학도병들은 군번 없이 참전했기에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군에 입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16세의 나이로 참전했던 육종덕(76)씨는 종전 후 뒤늦게 학업을 마치고 군에 재입대했다. 육씨는 "당시는 군대를 제대하지 않으면 취직이 되지 않았다"며 "학도병들은 군 복무 기록이 없어 재입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참전한 학도병의 수는 20만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병적(兵籍)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참전자 수와 희생자 수는 알려진 바가 없다. 생존해 있는 학도병은 점점 줄어 1500여명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잡지 창간호에 참전기를 남겼던 지희준(전 춘천교육장)씨는 지난 8월 말 세상을 떠났다.

요즘 노병들은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경 회장은 "천안함 폭침에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며 "지난 햇볕정권 10년 동안 안보 의식이 무뎌진 탓"이라고 했다. "늙은 우리가 뭘 바라겠습니까. 그저 우리가 피 흘려 지킨 이 나라가 굳건히 만대(萬代)에 이어지길 바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