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 뜻 이해하지만 화합위해 기도하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사진> 추기경의 4대강 관련 발언과 북한 비판에 대해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정구사)이 비난 성명을 내고 일부 진보성향 원로·중진 사제들이 '추기경 용퇴'까지 주장한 것과 관련, 16일 열릴 예정이던 서울대교구 긴급 사제 회의가 취소됐다.

서울대교구는 이날 오전 "정 추기경이 '사제들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은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위해 기도하자'고 당부함에 따라 긴급 사제 회의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긴급 사제 회의는 결론을 미리 갖고 토론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면서 "그런데도 일부 사제에 대해 징계를 논의할 것이라는 등 불필요한 억측이 있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 사상 유례가 없는 '추기경 비난' 사태는 서울대교구의 대응 자제로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갈 전망이다. 해석 논란을 빚고 있는 지난 3월 '주교단 성명'의 당사자인 주교회의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주교회의 이영식 미디어팀장은 "추기경님 말씀에 대해 주교들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이번 문제 때문에 주교들이 모이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주교회의의 또 다른 관계자는 "주교단 성명이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인지 '우려'인지 명확하게 밝혀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주교회의가 새로 입장을 밝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신부들은 이번 사태를 우려하는 반응이 많았다. 30대 중반 신부는 "다원화된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지만 내 주변의 사제들은 '그네들(정구사)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정구사가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천주교 미디어 관계자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지지하는 신부들도 있겠지만 보통 신부들은 신자들과 마찬가지 비율 정도로 거북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평신도들 사이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이 너무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서울대교구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의 80% 이상이 추기경을 옹호하고 정구사를 질타하는 내용이다. 이상윤씨는 "나는 여태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추기경의 발언에 대한 일부 신부들의 반응을 보고는 부끄러움과 절망감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솔직히 과연 그들이 신부가 맞는지 묻고 싶다"고 적었다. 추기경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김은태씨는 "그동안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정진석 추기경님의 행보는 신자들이 보기에 권력 있는 자, 가진 자들의 편이었습니다"라고 썼다.

정의구현사제단 홈페이지는 정구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이 90% 정도였다. 윤용표 요셉씨는 "지금 정사단 신부님들은 예전의 신부님들이 더 이상 아닌가 봅니다. 박통, 전통, 노통을 거쳐오면서 해온 역할에 많은 공감과 지지를 보낸 사람인데 이젠 아닙니다. 주님도 더 이상 들먹이지 마시고 추기경님께 용서 구하시고, 회개하세요"라고 적었다. 정구사는 홈페이지에 글을 쓸 수 있는 회원 가입을 차단했다. 정구사가 성명을 낸 10일부터 13일까지 90여건의 댓글이 올라온 반면 14일 이후는 없다. 정구사 관계자는 "홈페이지 리뉴얼(개선) 작업 중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