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비정부기구) 활동이 꿈… 진짜 굶어본 내가 뭘 못하겠나"

"남한으로 넘어오기까지 엄청난 고통이 무의미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하면 북한 사람들의 고통과 실상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17일 만난 탈북 대학생 박요셉(가명·26)씨는 160㎝ 조금 넘는 작은 키였지만 악수할 때 느껴지는 악력은 운동선수 같았다. 2008년 10월 단신으로 탈북한 박씨는 올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대학에 입학해 대학생활 1년을 마쳤다. 주변 탈북자들이 "1학기 때 중퇴만 안 해도 다행일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지난 1학기 보란 듯이 4.5점 만점에 4.37점을 받았다. 박씨는 "북한에서는 답이 하나만 있는 시험을 봤는데, 남한에 와서는 내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서 공부를 재밌게 했던 것 같다"고 고득점 비결을 밝혔다.

박씨는 방일영문화재단(이사장 조연흥)이 올해 처음으로 방일영장학생으로 선발한 탈북대학생 10명 중 한 명이다. 재단은 남북 간의 전혀 다른 교육내용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역경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탈북대학생을 지원하기로 했다. 북한을 탈출해 국내에 정착한 주민이 2만명을 넘었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탈북 청년들만 1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번 장학생 선발로 1974년 이후 방일영장학회의 대학(원)생 장학금 수혜자는 모두 522명으로 늘어났다. 방일영장학회를 운영하는 재단은 고(故) 방일영(方一榮) 조선일보사 고문과 방우영(方又榮) 상임고문이 출연한 사재를 금융기관에 예탁해 그 과실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박씨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남한에 온 제가 대학생활 하는 것도 꿈만 같은데 장학금까지 받게 돼 영광"이라며 "열심히 공부해서 탈북자들과 남한 사회를 위해 애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골수 공산주의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김정일 동지의 혁명사상'을 배웠다. 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1952년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고, 아버지는 강원도 최전방 기계화부대를 거쳐 중좌로 전역했다. 그는 "아버지가 1998년 제대한 뒤 국경지대인 신의주로 집을 옮기면서 끼니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궁핍해졌다"고 했다. 그 해 라디오를 수리하다가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우연히 듣고 주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북한의 실상이 잘못됐다는 사실도 깨달았다고 했다.

2000년 군에 입대한 박씨는 DMZ(비무장지대)를 넘어 귀순하기 위해 최전방 부대인 강원도 철원의 5군단에 지원했다. 보급품이 줄어 42㎏으로 입대했던 박씨는 31㎏이 됐다. DMZ로 귀순이 어렵다고 느낀 박씨는 2002년 말 탈영해 2003년 초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나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 감옥으로 넘겨졌다. 그곳에서 탈옥을 시도하다 잡혀서 심하게 맞아 무릎관절이 부러지기도 했다. 그해 6월 그는 기적적으로 탈옥에 성공했고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이때도 중국 교통경찰에 붙들려 중국군에 넘겨졌지만 측은하게 여긴 한 조선족 장교가 놓아준 덕분에 북송을 피했다고 한다. 그는 2005년 베트남으로 건너가 한국대사관에 진입하려다 경찰에 잡혀 추방됐고, 2007년 러시아로 들어가 우여곡절 끝에 2008년 10월 남한으로 오는 데 성공했다.

"저만큼 북한의 고통과 현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지요. NGO(비정부기구) 활동을 할 거예요. NGO 활동하면 굶어 죽기 쉽다고 하는데 진짜 굶어본 사람이라 그럴 걱정은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