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强攻후유증

〈제6보〉(68~86)=바둑돌은 판 위에 놓이는 순간부터 하나하나가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한다. 동료들끼리 서로 호응하는 유기체적 기능, 적과 몸을 부딪혔을 때 쏟아내는 기묘한 반탄력(反彈力)은 그들을 하찮은 돌덩이로 여길 수 없게 만든다. 궁핍한 적에게 일방적 공격을 퍼붓다 역습을 받아 실속을 잃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프로바둑에선 그래서 살생능력보다 '협상능력'을 최고의 기술로 친다.

최철한의 능기(能技)는 역시 공격이다. 그러나 상대 곤마만 보이면 흥정은 안중에 없고 칼부터 뽑아 직선공격에 나서는 게 그의 약점. 69만 해도 그렇다. 참고도 백2 이하의 차단을 방지한 수였지만, 그래도 이쪽이 현명했다. 백 미생마를 인질 삼아 상변에 거대한 흑진을 건설할 수 있지 않은가.

73 역시 고삐를 잠시 늦춰 '가'~'라' 부호 순으로 상변을 챙겨야 했다. 85까지 마치 하수 다루듯이 몰아쳤지만 86으로 뛰고 보니 내 집만 깨졌을 뿐 두터워진 것도 아니다. 동물원을 탈출한 곰 한 마리가 앞뜰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달아난 꼴. 만약 이세돌이었다면 이 대목에서 절대 직공(直攻)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철한이 낭패스러운 눈길로 좌변을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