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연금 나누는 '보통 사람들'

지난 17일 한진종합건설 이금식(70) 회장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울산지회를 찾아가 1000만원을 기부했다. 이 회장은 매달 80여만원씩 받아온 상이연금으로 든 1년 만기 적금을 타서 '행복한 연금 나눔'에 기부했다. 이 회장은 "연금으로 어려운 노인들을 돕는다는 말에 내 연령대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어 참여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젊은 시절 해병대 부사관으로 근무했다. 1966년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1970년쯤 군복을 벗었다.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콘크리트 치는 법과 목수 일을 배웠다. 이 회장은 "한동안 공사장 일을 못 구해서 애들 도시락도 챙겨주지 못했다"며 "베개 속에 유서를 넣고 열차 길에 뛰어들려다 아이들이 눈에 밟혀 유서를 태우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이 회장은 공사장 일에 하수도 청소, 막걸리 배달 같은 일까지 닥치는 대로 하며 돈을 벌었다. 건설업에 뛰어든 뒤에는 울산공고에 찾아가 3학년 건축과 학생에게 건설의 기초를 배우기도 했다. 사업은 점차 궤도에 올라서 지금은 울산 지역에서 '크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은 2002년 상이연금을 받게 됐다. 2000년쯤 갑자기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때부터 이 회장은 연금을 모아 연말마다 불우 청소년 돕기나 조손 가정 학비에 보태왔다. 2006년에는 10억원을 출자해 저소득층 아이들의 학업을 돕는 '경암문화장학재단'을 세우기도 했고, 지난해엔 1억원 이상을 기부한 사람들의 모임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이 회장은 "돈 없어 하고 싶은 거 못하는 서러움을 내가 알기 때문에 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연금이 별로 필요없는 사람들이 여러 사정으로 연금 혜택을 못 받는 노인들을 위해 조금씩 나누면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사하구에 사는 강상태(68)씨는 이달부터 매달 5만원을 '행복한 연금 나눔'에 기부하기로 했다. 20여년을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꼬박꼬박 납부해 7년 전부터 받는 국민연금 월 40여만원의 일부다. 강씨는 "몸이 건강해 퇴직 후에도 간간이 일을 해 밥벌이를 하고 있다"며 "나중에 내가 세상 떠나면 우리 딸들이 통장을 보고 '좋은 일을 한 아빠'라고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30년 소방공무원 생활을 마감한 최정근(55·전주 완산구)씨도 매달 3만원씩 3년간 '행복한 연금 나눔'에 내기로 했다. 최씨는 지금 초빙교원 자격으로 1주일에 두 번씩 전북 군산 군장대학에서 소방안전학을 강의하고 있다. 퇴직은 했지만 아직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둘째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가장이다. 그런데도 최씨는 자기 공무원연금을 쪼개 노인들을 돕기로 한 것이다. 최씨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게 공무원인데, 비록 현직을 떠났어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