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주객顚倒

〈제9보〉(112~133)=프로기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 읽기도, 계산능력도 아니다. 패배의 아픔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힘, 복원력(復元力)이 최고 자산이다. "지금 내게 제일 필요한 것은 대국이다. 빨리 잊고 올라가기 위해 나는 더욱 독해질 것이다." 2005년 제5회 잉씨배 결승서 창하오(常昊)에게 패한 직후 최철한이 내뱉은 독백이었다. 그는 과연 4년 뒤 6회 잉씨배 제패로 스스로와의 약속을 보란듯 지켜냈다.

112는 정수. 113 자리를 선수(先手)하고 싶지만 참고1도처럼 11까지 쪼그라들고 선수를 빼앗기게 된다(7…▲). 116에 이르니 얼마 전까지 흑의 영토였던 우상귀에 백이 차고 들어앉았다. 주객(主客)이 완전히 뒤바뀌면서 우변 전체가 얼렁뚱땅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구가한다.

흑으로선 선수를 챙겨 중앙 백 공격에 마지막 승부를 걸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다. 117이 그 출발점. 백도 살자고만 하면 118로 참고2도 5까지 쉽게 산다. 그러나 중앙이 막히면 흑6의 침입수가 꽤 까다롭다. 118 이하 132까지 백은 연결, 흑은 차단을 위한 악착같은 수순. 뒤이은 133의 맥점에 의해 기어이 상하의 백은 절단됐다. 중앙과 좌하귀 양쪽 백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