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 아이들, 사진전 열고 세상으로 나왔다

27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 화사한 색채의 사진 100여점이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꽃·풀·운동장·구름 등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물을 찍은 사진이지만 한 점 한 점 들여다보면 구도와 색채가 남달랐다.

국회의원 16명을 포함한 200여명이 사진을 둘러보며 작품평을 나누는 동안, 10대 소녀 20여명이 전시장 곳곳에서 쑥스러운 얼굴로 벙글거렸다.

"내가 찍은 사진이 진짜 걸릴 줄은 몰랐어요. 살면서 어른들에게 칭찬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런 경험 태어나서 처음이에요."(이수정·가명·15)

이 전시회는 경기도 안양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모은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소통' 전(展)이다. 정심학교는 여느 중·고교와 달리 교육과학기술부가 아닌 법무부 관할이다. 범죄와 단순비행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가 범죄 쪽으로 미끄러진 아이들이 법원에서 2년 이하 보호처분을 받고 이곳에 온다. 전국에 하나뿐인 '여자 소년원'이기도 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동안 소년원 아이들의 사진을 교내와 법무부 로비에 20~50점 정도 전시한 적은 있지만, 법무부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비행 청소년' 딱지가 붙은 정심학교 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고운 사진을 찍었을까? 사진가 고현주씨가 2009년 1월부터 꼬박 2년간 매주 1회 이 학교를 찾아 자원봉사로 아이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쳤다. 고씨는 중학교 음악교사로 일하다가 사진으로 방향을 튼 젊은 작가다.

 

고씨는 대형 카메라 제조업체에서 기증받은 카메라 20대를 짊어지고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 멀뚱멀뚱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쥐여주고 주변의 사물을 찍게 했다. 기숙사·교실·운동장에 국한된 좁은 생활공간이지만, 아이들은 곧 기발한 사진을 찍었다.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 풀꽃 뒤의 아기 벌레, 먼지 나는 운동장에 길게 드리운 친구의 그림자…. 나쁜 짓을 저질러 여기까지 왔다는 쓸쓸한 마음과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보통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사진 속에 엇갈렸다.

이 학교 학생들은 대다수가 가난과 방치를 경험했다. 교직원 A씨는 "주소가 '○동○호'인 아이들은 거의 없고 다들 '산 ○번지'나 '○○번지 반지하 방'"이라고 했다. 한 학생은 "사회에 있을 때 교사로부터 매일 꾸지람만 듣고 단 한 번도 '잘한다'는 소리를 못 들어봤다"고 했다.

아이들은 마른 종이가 먹을 빨아들이듯 사진을 배웠다. 사진 실력이 늘면서 행동도 변하고 자신감도 붙었다. 고씨는 "제빵·미용 같은 돈 버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성을 닦아서 내보내야 아이들이 다시 비행에 휩쓸리지 않는다"며 "사진 교육은 아이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사다리"라고 했다.

본지 특별기획 '사다리를 세우자'에 정심학교 이야기가 소개돼 화제를 모으면서 29일까지 사흘에 걸쳐 이번 전시회가 열리게 됐다.

이수정양은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지금은 여기 있지만 나가서 보람 있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간 뒤에도 전시회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사다리' 기획 취재차 만났을 때 수정이는 "막일하는 아빠가 경제적으로 힘들어해서 집에 돌아가도 학교 대신 검정고시를 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날 수정이는 쑥스럽게 웃으며 "아빠가 '무슨 소리냐. 학교 다녀라'라고 해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내 합격했다"고 했다. 수정이 아버지는 가난 때문에 자식 4남매 중 장남(24)과 수정이만 남기고 가운데 둘을 입양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