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팔아 자식 공부시키듯…'… '소 장학금'으로 후배들 지원

"이런, 우리 깡이는 어떡하지. 괜찮으려나?"

경기도 성남 집에서 TV로 구제역 확산 소식을 본 강재섭(62) 전 한나라당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전북 정읍 은성목장에 전화를 걸어 자기가 키워달라고 맡긴 소 깡이가 무사함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내 성(강)을 따서 이름을 '깡이'로 지었다"면서 서랍에서 깡이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강 전 대표는 태어난 지 20개월 된 깡이를 내년 봄에 팔아 나오는 수익 600여만원을 학원밀알장학재단에 '소 장학금'으로 내놓기로 했다. 그도 경북고 시절 학원밀알장학재단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이 장학재단은 1952년 6·25 전쟁 중에 출판사 '학원사'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살릴 길은 인재 육성뿐'이란 뜻으로 세웠다. 매년 45명의 고등학생에게 학비를 주고, 대입 첫 등록금도 내준다. 현재는 주로 이 장학금을 받아 성장한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강 전 대표는 매년 후배들을 위해 500만원가량을 학원밀알장학재단에 기탁해 왔다. 이번에는 '소'를 내놓기로 한 것이다.

"농민들 마음을 알고 싶어 키운 깡이를 도축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데 어떡하면 좋을지 고민됐습니다. 마침 학원밀알장학재단이 생각나서 보태기로 했어요." 그는 작년 봄부터 깡이를 키웠다. "당 대표이던 2006년 12월 전북에 소 브루셀라병이 창궐했어요. 그때 가봤던 농장에서 500마리 소가 모두 폐사되자 울부짖던 농민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강 전 대표는 2008년 7월 정계 은퇴 후 소를 한 마리 사서 전염병 때문에 키우던 소를 모두 잃은 은성목장에 맡겼다. 깡이가 커가면서 애정이 깊어졌다고 한다. 목장에 자주 전화해 소식을 물었고, 사진을 받아보기도 했다.

학원밀알장학재단의 박원선(72) 이사장은 "옛날에 '소 팔고 논 팔아 자식 공부시켰다'는 말이 떠오른다"며 "장학생 출신인 다른 회원 10여명도 소를 키워 '소 장학금'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