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세계 바둑 결산] 중국 바둑, 쿵제 앞세워 한국 압도

올 한 해도 중국 바둑의 파고(波高)는 높았다. 12월 말 현재 세계 타이틀 보유 판도는 한·중 양국이 5대5로 팽팽하지만(표 참조), 내용면에선 한국이 중국을 따라잡지 못했다. 2010년에 열린 메이저급 남자 개인 결승전만 따질 경우 4대1로 중국의 압도적 우세 속에 해가 저문 것.

한국은 이세돌이 따낸 제2회 비씨카드배 하나로 간신히 체면을 지켰다. 이창호(14회 LG배), 이세돌(23회 후지쓰배), 허영호(15회 삼성화재배) 등은 모두 중국 기사와의 결승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국 바둑이 개인전 우승 1개에 그친 것은 1991년 이후 20년 만이다. 2000년 8월부터 2003년 7월까지 3년간 각종 세계대회서 23연속 제패를 이뤘던 일은 아득한 신화가 됐다.

반면 중국은 쿵제(孔杰·28)를 앞세워 한국을 압도했다. 11월 말까지 무려 4관왕이었던 쿵제는 현재 3관왕으로 군림하며 확실한 세계 일인자로 군림 중이다. 특히 '천적'으로 불리던 이세돌에게 7월 제23회 후지쓰배 결승서 승리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는 올해 이세돌에게 3승2패를 기록하며 둘 간 총전적을 6대14로 좁혔다.

구리(古力·27)의 재기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5월까지 세계 5관왕으로 군림하다 차례로 상실, 무관으로 떨어졌던 그는 12월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정상의 일각을 되찾았다. 구리는 통산 7회 세계를 제패했고 준우승은 한 번도 없었다. 쿵제 또한 작년 초 14회 삼성화재배 결승서 이세돌에 패한 이후 5차례 오른 결승을 모두 승리로 장식 중이다. 중국의 투톱이 '결승 불패'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올해 열세는 결국 '간판급' 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사실 관록이라면 중국의 투톱은 이창호와 이세돌 등 한국 투톱과는 비교도 안 된다. 이창호는 세계 최다인 21회나 정상을 정복했고 4관왕에도 두 차례나 올랐다. 이세돌 역시 2007~2008년 사이 4관왕으로 군림하는 등 세계대회 우승 수가 13회나 된다. 두 사람의 전열 재정비 여부가 새해 판도의 중요한 변수인 셈.

새해엔 벽두부터 제15회 LG배 및 제8회 춘란배 결승전이 잇달아 열린다. LG배는 쿵제와 퍄오원야오(朴文堯) 등 두 중국 기사 간의 패권 싸움으로 좁혀져 있다. 춘란배를 놓고 중국 셰허(謝赫)와 격돌할 이세돌의 책임이 그만큼 막중해졌다. 역시 연초에 열릴 농심배와 정관장배 남녀 단체전 결과도 주목된다.

새해 한·중 경쟁 무대는 좀 더 참신한 얼굴들로 옮겨갈 가능성도 크다. 두 나라 모두 '투톱'을 뒤에서 바짝 쫓는 강호들이 즐비하기 때문. 한국에선 최철한 박영훈 강동윤 등 '세계제패 경험자'들과 박정환 허영호 김지석 등 '원석(原石)'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중국에선 천야오예(陳耀燁) 저우루이양(周睿羊) 구링이(古靈益) 등이 요주의 인물로 꼽힌다.

연말 아시안게임서 보았듯 한국 바둑의 새해 전망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재미 랭킹 전문가 배태일 박사(스탠퍼드대 교수)는 "쿵제가 올해 타이틀 무대서 활약이 뛰어났다지만 10월 이후 10승8패로 크게 부진하다. 내년엔 쿵제보다 이세돌에게 걸고 싶은 이유다. 또 박정환 등 신예들도 일을 낼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최근 여러 면에서 불편해지고 있는 한국과 중국, 바둑에선 새해 각각 어떤 성적표를 받아쥐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