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대권 잠룡들 '反朴의 계절'

"대선이 2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대권 경쟁을 과열시켜서 어쩌자는 거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최근 복지를 화두로 한 정책 구상을 내놓고 '싱크탱크'까지 발족시키자 대권 잠재 주자들의 견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일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연 데 이어 27일엔 학자·전문가 78명이 참여한 일종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시켜 대선 주자로서의 활동을 예상보다 빨리 시작했다.

오세훈·김문수·정몽준 등 여권 주자들은 바짝 긴장하면서 경계하는 분위기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 참모는 "오 시장은 박 전 대표의 복지 구상에 대해 '우리 사회는 2012년 대선에서 한 번 더 성장을 화두로 삼아 지속가능한 대안 복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특히 오 시장은 "세대·계층·민관 간의 동의가 없는 복지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퍼주기'식 포퓰리즘"이란 견해를 갖고 있다고 전해졌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29일 친이계 '함께 내일로' 모임에 참석해 "대권이 조기 과열되면 국가적 리더십에 혼선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지사의 한 측근도 "다른 주자들이 발이 묶인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선수를 치겠다는 것 아니냐"며 긴장했다. 그는 "김 지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미래연구원'에 '1급 전문가는 별로 없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시각이 담긴 뼈 있는 말"이라고 했다.

정몽준 전 대표는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한국형 복지' 등 온갖 미사여구를 붙인 복지 구상이 난무하고 있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 포퓰리즘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정 전 대표측의 한 인사는 "야권에 유리한 복지 프레임을 박 전 대표가 가져오는 것에 대해 정 전 대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여권의 잠재 후보군으로 꼽히는 이재오 특임장관측 관계자도 "현직 대통령 임기가 2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대선용 천막을 치고 학자들을 모으는 게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의문"이라며 "지금은 민생과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할 때"라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표의 행보로 대선구도가 조기에 과열되면 정권 재창출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반면 친박(親朴)측은 경쟁 주자들의 이런 비판적 분위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친박 경제통인 이혜훈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좋은 정책을 잘 만들어서 국민과 나라에 도움이 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그런데도 박 전 대표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정치공학적 시각"이라고 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오 시장과 김 지사는 각각 지자체 산하 연구원을 갖고 있고, 정 전 대표도 이미 1년 전에 싱크탱크를 출범시키지 않았느냐. 박 전 대표는 오히려 현 정권의 성공을 위해 그동안 공식 활동을 자제해왔다"고 했다.

야권의 유력 후보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싱크탱크나 만드는 게 할 일이냐"며 "(나는) 아직 대선 준비를 한다며 여유롭게 개인 욕심만 챙길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까지 박 전 대표 행보에 대한 반응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