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軍에 자식 보낸 부모들 생각하면 미안해서…"

지난달 초 일요일 정오쯤 서울 도봉구 도봉동 서울광염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서던 박현국 집사 앞에 한 남성이 다가섰다. 그는 "얼마 안 됩니다. 자녀가 군대에서 사고를 당해 가정이 힘들어진 경우나 자녀가 입대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세요"라며 흰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1000만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그는 "아들이 3년 전부터 병역 특례로 기업체에 근무하면서 번 돈을 적금에 들어 모았다"며 "아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병역 의무를 대신하고 있지만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돈을 받는 사람들에게 내가 누군지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돌아섰다.

박 집사는 이 돈을 누구에게 전달할지 고민하다가 교회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지역·종교에 관계없이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교회 박이삭 목사는 군에서 훈련받다가 숨진 병사의 가족을 추천했다.

박 목사가 추천한 박형종(61)씨는 7년 전인 2003년 둘째 아들 고(故) 박병준(당시 23세)씨를 잃었다. 병준씨는 서울대 수학과에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잘해 형편이 어려웠던 박씨 가족에게 기쁨이자 희망이었다.

2003년 2월 20일 입대한 병준씨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던 3월 21일 급성백혈병으로 쓰러져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이송됐다. 1주일 만에 한양대병원으로 옮겨 형 성준(32)씨의 골수를 이식받았다. 병준씨는 수술 직후에는 좋아지는 듯했지만 다시 악화해 그해 8월 8일 숨졌다.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 박씨는 아들을 잃고 3년 뒤인 2006년 공사차량에서 떨어져 눈 등을 크게 다쳐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어머니 이순옥(58)씨는 아들이 숨진 뒤 우울증과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아들이 사망하기 전까지 일만 기억한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훈련 중 사망한 병준씨는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고 박씨 부부는 국가에서 받는 연금 월 6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교회는 박씨 가족을 찾아가 300만원을 전달했다. 박씨는 "늘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해줬던 둘째 아들이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겠습니다"고 했다. 박씨는 "돈을 제공한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교회는 "제공자가 신분을 밝히길 원하지 않는다"며 양해를 구했다.

교회 관계자는 "나머지 700만원은 군대 내 교회 3곳에 전달했다"며 "모두 입대로 부모 생계가 곤란해진 병사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교회들"이라고 했다. 교회 관계자는 "돈을 전달한 곳을 알려주자 1000만원을 제공한 분도 '돈을 소중한 곳에 잘 써줘서 감사합니다'고 말하며 기뻐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