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촉촉한 시선] 잔혹, 환호와 혐오 사이에서…

5년 전의 일입니다. 차승원·박용우 주연의 '혈의 누'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 잔혹함이 논란이 됐습니다. 대역죄를 지은 죄인에게 처하던 극형인 능지처참(陵遲處斬)을 극사실적으로 스크린에 구현한 사극이었죠. 그때만 해도 '현미경적 리얼리티'를 가능하게 했던 특수효과와 CG(컴퓨터그래픽)의 기술력 발전을 예찬하던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10년 한국 영화의 특징을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지만 올해 역시 지배적인 키워드 중 하나는 '잔혹'일 것 같습니다. 원빈의 '아저씨', 최민식·이병헌의 '악마를 보았다', 수애·유지태의 '심야의 FM', 김윤석·하정우의 '황해'까지.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잔혹에 매혹 당한 2010년 충무로군요. 5년 전과의 차이는? 글쎄요. 핏빛 사극이나 스릴러·호러 등 장르의 족쇄를 벗고 주류 상업영화 전반으로 확대됐다고 할까요. 장르적 접근이 아니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더욱 버겁고 불편한 경험이군요.

사실 잔혹하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비난하는 건 폭력적인 일입니다. 문제는 이 잔혹한 이미지들이 내러티브의 전개상 필연적인가 아니면 단순하게 잔인한 이미지만을 과잉으로 소비하면서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가 여부겠죠. 올해 최다 관객(623만명) 영화인 '아저씨'는 관객들이 전자에 동의한 예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어린 아이의 장기를 팔아먹는 인간 말종들에 대한 공분(公憤)이 '천하무적 아저씨 원빈'의 잔인한 사적 복수에 어느 정도 면죄부를 줬다고나 할까요. 반면 아무리 천하의 악당이라고 해도 자식이 보는 앞에서 고문·살해당하는 아버지를 묘사한 '악마를 보았다'에 대해서는 혐오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손도끼와 소뼈다귀를 휘두르는 '황해'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아직 상영 중인 영화라 그렇기도 하지만 청부 살인 명령을 받은 구남(하정우)과 브로커 면가(김윤석)의 절박함에 어느 정도 동감할 수 있는가 여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나 연극에서 잔혹의 역사는 기요틴에 의해 머리가 굴러 떨어지던 18세기 프랑스대혁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더구나 영화는 태생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해온 장르. 이런 잔혹한 비주얼(사실 관능적 비주얼도 마찬가지죠)들은 결국 시각적 쾌락을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욕망과 새로운 스펙터클을 원하는 관객의 욕망이 만난 지점이겠죠. 물론 개별 영화의 완성도와 이미지의 신선도가 관객의 환호와 혐오를 결정짓겠지만 개인적으로 작은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2011년 토끼해에는 좀 더 소박하고 아름다운 비주얼들이 화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