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보내며] 우는 어머니들을 더 볼 수는 없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늙은이가 된 지금까지 조명을 환하게 밝힌 마루에서 잠을 잔다. 방 안의 협소한 공간에 잠자리를 보면 도무지 답답하고 억눌려서 잠들기가 어렵다. 조용하고 은밀한 장소가 아닌 개방된 공간이어야만 편안한 수면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힘든 일이다.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불면의 조건들은 협소하거나 밀폐된 공간에선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억압은 아마도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전쟁이란 재앙에서 원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6·25전쟁 때 나는 상당한 기간 어둡고 습기로 가득 찬 방공호에 갇혀 살았다. 방공호란 존재 자체부터 호감을 가질 수 없는 대상이었는데, 그 지붕 위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포 소리와 총격 소리가 끊임없이 날아다녔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조차 몰랐던 어린 소년은 그 방공호 속에서 폭압적인 공포심으로 사시나무 떨듯 하며 밤을 지새웠고, 어디 숨어 있는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울면 곁에 웅크리고 있던 어른들이 한 손으로는 내 뒤통수를 내려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입을 틀어막곤 했다.

그 이후 수복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삭풍이 휘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방문을 조금이나마 열어 놓아야 잠들 수 있었다. 일개 산골 아이에 불과했던 나의 뼈와 살 속에는 그로써 우리의 현대사가 겪었던 질곡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되었다. 일본강점기, 그리고 혼란의 해방공간, 살육이 자행되었던 6·25전쟁, 음험했던 군사독재, 이념이 남긴 혹독한 갈등을 겪으며 내 고유한 삶의 궤적들은 가차없이 흐트러지고, 정체성은 무엇인지 눈먼 개처럼 갈팡질팡을 거듭했을 뿐, 단 하루도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없었다.

그런 상처들이 채 아물지도 않았던 2010년, 나는 내 삶의 명분들이 빠른 속도로 퇴화되어 가고 있다는 모멸감과 분노, 그리고 낙담 때문에 선잠에서 깨어나기를 거듭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슴이 쓰라릴 정도로 많은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곡절로 그리고 무슨 음모를 가졌기에, 부드럽고 향기로운 생명과 사랑의 근원인 우리들의 어머니와 아내들을 이토록 울리고 있는 것일까.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에서 숨진 마흔여섯의 고귀한 영혼들 가운데 한 어머니인 윤청자 여사는 "아들 죽인 엄마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 논두렁에 앉아 우는 날이 많았다"며 다시 울었다. 우는 것도 숨어 울지 않으면 안 되었던 우리들의 어머니를 이제는 제발 그만 울게 해야 한다. 천안함에서 펄펄 끓는 젊은 생명 마흔여섯을 전사시키고도 불과 8개월 만에 연평도 기습 공격에서 또다시 네 사람의 목숨을 잃었던 그들 어머니와 아내들은 또 얼마나 울었던가.

이런 와중에도 우리의 국회에서는 주먹다짐이 오가는 정쟁이 너무나 뻔뻔스럽게 계속되었다. 자기 자신이 국민적인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공인(公人)인지 시정잡배에 불과한 사람인지 깨닫지 못하는 정치인이 있고, 욕설과 막말로 나라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에 거침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쾌락을 즐기는 저질 정치인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니 절로 한숨짓게 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우리의 고귀한 언어에 오물을 뒤집어씌우는 일을 일삼는 그런 정치인은 한둘이 아니어서 스스로 모멸감을 느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또 그 나름대로 체통을 유지하면서 굴러가고 있다는 것에 신기함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그 신기함의 저편에 신기루처럼 떠오르는 환영은, 바로 지하 700m 갱도에 매몰되어 있던 33명의 광부가 69일 만에 피 한 방울 흘리는 손상도 없이 전원 생환되었다는 기적을 되새기게 한다. 김연아 선수가 세계의 피겨 역사를 바꾸어 놓았고, 패기만만한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가서 온몸을 던져 국위를 선양하고, 우리의 건설 산업과 과학 기술이 지구 위의 여러 곳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에서 우리의 희망이 좌절되지 않았음을 본다.

다가오는 새해는 그런 희망찬 것들이 극대화되어서 우리들 어머니들 얼굴에 검버섯처럼 얼룩진 눈물 자국을 닦아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어떤 음모도, 어떤 계략도, 어떤 미친 짓도 우리들 어머니로 하여금 더 이상 눈물짓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