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경제에 집착한 한국사회, 물질적 번영 이뤄 이제는 市場이 답 못주는 正義를 논해야"

올해 한국 사회에는 '정의(正義) 신드롬'이 불어닥쳤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치철학 서적 '정의란 무엇인가'는 60만권 넘게 팔렸고, 그가 지난여름 방한(訪韓)했을 때 딱딱한 철학 강의에 한꺼번에 4500명이 몰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1일 하버드대 대형 강의실에서 올해 마지막 수업을 끝낸 샌델 교수와 송년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한국 사회가 시장중심주의에 경도됐음을 지적하며, "한국사회는 시장이 답을 주지 못하는 정의의 문제에 대해 깊이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이 왜 갑자기 '정의'에 관심을 갖는가.

"지난 수십 년간 경제학이 순수 정치학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제적 관심과 추구, 집착이 삶의 중심에 있었다. 그 덕분에 많은 성과를 내서 물질적으로 부유해졌고 번영을 가져왔다. 하지만 경제적 집착은 도덕과 윤리에 대한 민주주의적 성찰을 몰아내는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초래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란.

"부가 증대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동시에 빈부 격차가 늘어났고, 이 불평등이 사회적 유대를 갉아먹는 것도 목격했다. 사람들은 이를 염려하기 시작했고 정의와 불평등, 공공선과 시민으로서의 의무 등에 대해 공적으로 토론하고자 하는 열망과 허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 샌델 교수는

학기 마지막 수업, 마이클 샌델(57) 교수가 입장하자 하버드대 학생들은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마치 공연예술가처럼 짜임새 있게 진행되는 그의 정의 수업이 지난 20여년간 하버드대생 사이에 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혔는지 이해됐다. 샌델 교수는 지난 2008년 미국 정치학회가 뽑은 최고의 교수로 선정됐으며, 지난해 영국 BBC방송의 공개강연 프로를 진행했다. 그는 자유주의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 비판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공동체주의자로 분류된다.

―미국발(發) 경제위기가 정의에 대한 담론을 촉발했는가.

"금융위기는 시장지상주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시장지상주의는 시장 자체가 공공선을 달성하는 주요 수단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금융위기는 시장의 마법적 기능에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시장의 기능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다시 돌아보면서 경제적 집착이 불러온 다른 부작용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 주도 사회에선 자신들이 기초로 삼고 있는 가치를 방어하지 못하는가.

"사회적 통합, 안보, 평등, 커뮤니티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 등은 고귀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에 매우 필요한 가치들이다. 하지만 시장중심 사회는 너무 개인적 소비주의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가치들을 훼손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은 연평도를 공격해 민간인을 살해했다. 한국이 북한에 대해 강하게 보복하는 것이 정의가 아닌가.

"보복과 전쟁, 평화에 관해 결정할 때는 정의와 함께 판단(judgement)과 신중함(prudence)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정의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군사적 보복을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판단과 신중함은 때때로 이를 억제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분명 이 문제는 까다로운 정치·군사·외교적 딜레마다."

―그때 신중함이란 무엇인가.

"때론 정의의 추구를 억제하는 것이 정치적 지혜이고 판단일 수 있다. 보복을 할 권리를 갖고 있는 국가가 보다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동료 및 친구들이 북한에 대해 얘기할 때 미국 정책결정자들과 달리 미묘한 어감의 차이와 균형감을 갖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한다. 나는 미국 정부가 한국인들이 이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북한과의 분쟁을 어떻게 다루는지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여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에 관한 당신의 책이 여러 딜레마에 처한 한국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내 책은 시장이 주도하는 사회의 장기적 효과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말하고 있다. 시장이 주도하는 사회는 공리주의적 가정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총생산(GDP)을 최대로 높일 수 있는 정책은 무엇이든지 공공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접근으로는 삶을 들여다볼 때 한계가 있다. 내 책은 한국 사회에 소비주의와 GDP 극대화를 넘어서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한국에 그러한 움직임이 있는가.

"이런 대안 가운데는 정의와 개인의 권리, 부의 공평한 분배 등이 있다.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사회'에 대해 연설했다. 대통령이 제시한 아이디어는 토론의 시작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