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들려주자" 3대째 청각장애인 교육

지난 12월 29일 오후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청각장애인 특수학교 '부산구화(口話)학교'. 영아학급에서 이혜영(33)씨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어머니, 아이 감기 걸린 것은 좀 어때요?"라고 물었다. 모니터 속에서 남구 문현동에 사는 소모(36)씨와 양쪽 귀에 보청기를 낀 한 살배기 여아가 손을 흔들고 있다. 소씨는 "우리 딸이 화상(畵像)교육을 받으면서 활발해져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보청기 활용법 교육은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교실 벽에는 '들려주는 대로 말하고 들려주는 만큼 말한다'고 적혀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9월 전국 처음으로 청각장애 영아들을 위한 화상교육을 하고 있다. 매주 한 번씩 다섯 가정의 영아를 인터넷 화상으로 가르친다. 이용우(58) 교장은 "선친께서 청각장애인을 위해 헌신하신 뜻을 잇기 위해 온 가족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의 아내 문향숙(58)씨도 여기서 청각장애 영아들을 가르친다.

이씨의 아버지 고(故) 이종수 교장은 1966년 부산구화학원을 설립했다. 이후 사업과 집을 모두 처분해 1970년 대연동에 부산구화학교를 세워 교장이 됐다. 와이셔츠 공장과 양계장을 하면서 꽤 많은 돈을 모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42세이던 1959년 열병으로 사경을 헤맸다. 아들은 "열이 많이 오를 때면 소리가 안 들리는 증상을 보였다"며 "아버지는 1년간 투병하면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후 아버지는 입모양을 보고 대화할 수 있도록 청각장애인들에게 구화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재산을 팔아 학교를 세우는 바람에 단칸방에 사는 것이 싫었고, 자신은 직장생활을 원했다. 그러나 곁에 있어 달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결국 받아들였다. 그는 "1983년부터 3년간 매년 석 달씩 일본농아학교에 가서 청각구화법(보청기로 말을 듣고 말을 하도록 하는 교육법)을 배워 왔다"고 했다. 1970년 부산구화학교 설립 당시엔 학생이 4명에 불과했지만, 청각구화법을 배우려고 학생이 몰려들어 1980년대엔 200명을 넘어섰다.

어려서부터 청각장애인들과 자란 이씨의 외동딸 이혜영씨도 특수교육을 전공한 후 이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3대(代)가 청각장애인을 돕고 있는 셈이다. 그는 "청각장애 부부가 쩔쩔매면서 청각장애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을 보고 영아들을 위한 교육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씨와 올봄 결혼하는 우수창(34)씨는 화상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우씨는 IT기업 연구원이다. 그는 "전에는 청각장애인에 대해 관심 없었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돕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