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민의 평점 따윈 필요없어] 카페 느와르… 고색창연한 대사가 낯설고 불편?고전소설 같은 서울풍경 보는 맛

책이 되어버린 영화가 있다. 배우가 입을 열면 밑줄을 긋고 배우가 움직이면 책장을 넘겨야 한다. 배우들은 옛날 세로쓰기로 된 세계명작전집에나 나올 법한 문어체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읊조린다. 관객은 '영혼의 양식'인 이 영화를 장장 3시간18분 동안 집중해 읽어야 한다. '카페 느와르'를 보는 일은 이렇게 낯설고 녹록하지 않다. 이야기를 중요시하는 관객이라면 창작자의 고통보다 창작자의 유희만이 느껴져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꼬리뼈의 협조만 있어준다면 동시대의 시공간을 고전 소설의 한 대목처럼 읽는 독특한 영화 한 편을 경험할 수 있다.

'카페 느와르'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를 토대로 그 고색창연한 대사마저 서울의 풍경 안에 그대로 오려 붙인 작품이다. 음악교사인 영수가 유부녀 미연을 향한 사랑에 괴로워하며 청계천변을 배회하다 '백야'의 그 소녀를 만나 다시 희망을 품으나 결국 베르테르처럼 무너진다는 이야기는 역시 문학에 기대어 있다. 그러나 단순히 문학을 향한 영화의 동경만이 있는 건 아니다.

'카페 느와르'는 그 자체로 영화를 향한 뜨거운 연서(戀書)다. 지치도록 장황한 이 연애편지에는 오랫동안 필사의 애정으로 영화를 읽고 쓴 감독 정성일의 감성, 기호, 취향, 세상을 향한 발언이 의외로 정직하게 배치되어 있다. '극장전', '괴물', '올드보이' 등 한국 영화부터 허우샤우시엔의 '빨간 풍선', 장 뤼크 고다르의 '주말'·'국외자'들까지, 충실한 영화광이라면 감독이 애증을 주고받은 영화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혹, 이렇게 심어놓은 장치들을 포착 못해 자신의 무식을 탓해야 하는 관객이라도 '카페 느와르'가 보여주는 서울의 색다른 풍경에는 공감을 표할 것이다. 영화는 또 하나의 주인공을 대하듯 서울을 그리고 기억한다. 애국가 배경화면으로 익숙한 남산타워는 우수 어린 실연의 풍경이 되고, 청계천은 연인들이 재회하는 운명의 장소가 된다. 그렇게 서울은 한 편의 영화가 된다. 이미 세상은 영화가 되어버렸고, 우리의 삶 또한 어느 변두리 극장에 절찬리 상영 중인 개봉작이라는 현실을 상기시키며.

'카페 느와르'는 감독의 의도대로 우리의 영혼을 쉽게 통과하지 못한다. 여과기에는 정체 모를 찌꺼기가 남고 영화는 그것의 성분을 맞춰보라 채근한다. 물론 그것을 추리하는 시간은 흥미로우나 왜일까. 영화를 본 후 마치 소개팅에 나온 남자가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들에 대해 너무 많이 떠들어 문득 쓸쓸해져 버린 듯한 이 기분은.

※카페 느와르=감독 정성일. 출연 신하균, 문정희, 정유미. 12월 3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