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코리아 '희망! 2011'] "PGA 한국선수 5명… 이건 혁명이죠"

"올해 PGA 무대에 서는 강성훈·김비오, 빨리 만나보고 싶습니다. 시즌 개막이 이렇게 기다려지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저도 올해 다시 우승할 자신 있습니다." 최경주(41)의 목소리는 밝았다. 한국 남자 골프는 올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무려' 5명이 함께 뛴다. 최경주, 양용은(39), 위창수(39)에 이어 지난해 강성훈(24)과 김비오(21)가 퀄리파잉스쿨(Q스쿨)을 통과한 것이다. 2000년 최경주가 한국인으론 처음 PGA 벽을 넘어선 뒤 11년 만이다. 올해 41개 대회를 치르는 미 PGA투어는 7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가 개막전이다. 이 대회는 전년도 우승자만 출전하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의 첫 대회는 14일 하와이에서 시작하는 소니오픈부터다. 어느덧 노장이 된 최경주는 2008년 1월 소니오픈에서 PGA투어 7승째를 올린 이후 3년 가깝게 우승하지 못했다. 그런 최경주가 요즘 자택이 있는 텍사스주 댈러스 인근 웨스트레이크에서 하루 10시간씩 연습하며 땀을 흘리고 있다. 

―슬슬 은퇴 준비할 나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 소리 들으면 섭섭하다. 서른 살인 홍순상 프로와 함께 훈련하는데 내 비거리가 더 나간다. 체력 저하도 없다. 3년간 겪었던 부상 후유증도 사라졌다. 요즘 제일 본받으려 하는 선수가 51세인데도 활약하는 케니 페리다."

―그의 어떤 점이 인상적인가.

"나이가 들수록 더 잘 치는 선수다. 비거리도 젊은이 못지않고, 늘 활력이 넘친다. 내가 페리처럼 되면 한국 후배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강성훈과 김비오가 Q스쿨을 통과한 뒤 최 프로의 축하 문자 메시지를 받고 기뻐했다.

"1999년 겨울 내가 처음 PGA Q스쿨을 통과했을 때 평소 잘 모르는 분들까지 전화와 축전을 보내줬다. 기쁨이 두세 배는 커지는 것 같았다. 그후 나도 남이 잘될 때는 꼭 그렇게 하려 한다. 강성훈과 김비오는 통과 가능성이 커 매니저한테 휴대폰 번호를 알아 달라고 했다. 그러면 후배 선수들도 더 친근감을 느끼지 않겠나."

―올해 한국 선수 5명이 PGA투어에서 뛰는데.

"PGA투어는 진출하기도 어렵고 생존하기도 어려운 무대다. 나와 양용은은 성적이 안 좋아 다시 Q스쿨을 통해 투어 카드를 획득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 선수 5명이라니. 이건 혁명적인 변화다."

―강성훈과 김비오 선수는 한국 무대에서 곧장 PGA투어로 진출했다.

"맞다. 그건 그만큼 우리 골프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골프 역사가 훨씬 앞서는 일본은 PGA투어 현역 선수가 이마다 류지 한 명뿐이다. 올해 Q스쿨 통과자도 없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낳았을까.

"한국 골프의 도전정신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미국이나 유럽 골프와 대등하게 경쟁할 날이 올 것 같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PGA에 진출할 생각은 어떻게 했나.

"1997년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에서 열린 골프 월드컵에 참가한 뒤 결심했다. 국내 연습장 매트에서만 연습하던 골퍼로서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무슨 말인가.

"천연 잔디가 깔린 드라이빙 레인지 시설이 워낙 좋았다. 코스도 뛰어났고 라커룸 시설도…. 그래서 대회 관계자에게 'PGA투어 선수들은 늘 이런 대접을 받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뭐라던가.

"'이거보다 나으면 나았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국내에 돌아와 PGA에서 뛴 한국 선수가 있는지 찾아보았더니 없었다. 그래서 '이거다. 내 인생은 이 길로 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당시엔 정보도 없었을 텐데.

"Q스쿨 통과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영어 공부, 시차 적응, 체력과 기술 향상 등이었다. 시차 적응 훈련한다고 한국에서 미국 시간에 맞춰 공을 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미국 서부시간 티오프 타임에, 어떤 때는 동부시간에 맞춰서 일어났다."

―햐!

"또 밥을 먹고 치면 어떤 스코어가 나오는지, 스테이크를 먹고 치면 어떤 점수가 나오는지도 비교해봤다.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내게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 해봤다. 방법이 옳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2000년 첫해 성적이 좋지 않아 다시 Q스쿨로 갔다.

"투어 자체가 서먹서먹했다. 누가 영어로 말이라도 걸까봐 슬슬 피해 다녔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서 살아본 김비오와 자주 전지훈련을 한 강성훈은 몇 타는 벌고 들어가는 거다."

―기술적인 부분은 어땠나.

"기술적으로도 많이 부족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드로나 페이드 샷 두 종류밖에 없었다. 정상급 선수들은 같은 드로나 페이드 샷이더라도 높이와 스핀 등에 따라 정말 다양한 구질의 공을 쳤다. 바람 부는 날 코스 공략법도 큰 차이가 있었다."

―올해 데뷔하는 강성훈과 김비오에게 PGA 생존법을 소개한다면.

"힘든 길이더라도 몸으로 부닥치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그럼 어떤 일이 생겨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데뷔 첫해 대부분 대회에서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톱10에 한 번 든 게 최고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정상급이었는데 이럴 수 있나 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면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2002년 데뷔 첫승 등 2승을 거두면서 PGA투어에서도 상위권 선수로 발돋움했다.

"2000년 두 번째 Q스쿨을 통과한 뒤 스코어 카드를 내러 가는데, 9번홀과 18번홀에 있는 워터 해저드에서 햇빛이 반사됐다. 꼭 천사의 날개처럼 보였다. 앞으로는 모든 게 다 잘될 것 같았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때 그 모습을 떠올렸다. 젊은 후배들도 각자 그런 긍정적 이미지를 마음에 품고 투어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지난 3년간 최악의 슬럼프였다.

"슬럼프는 자신이 인정하는 순간 진짜 슬럼프가 된다. 그래서 늘 잘될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2007년 PGA투어 상금 랭킹 5위까지 오른 뒤 메이저 우승을 하고 싶어 체중 감량 등 큰 변화를 시도했다."

―결과적으론 안 좋았다.

"너무 빨리 체중을 빼는 통에 체계적으로 하지 못했다. 가끔 샷할 때 근육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곤 했다. 이제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기한을 못박을 수는 없지만 올해 꼭 우승할 거라는 자신이 있다. 그리고 평생 꿈인 메이저 우승에도 도전할 것이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나흘 내내 타이거 우즈와 동반 라운드를 펼쳤다.

"즐거운 추억이다. 나도 우즈도 정말 열심히 치려고 서로 격려했다. 올해 우즈는 재기한다고 본다. 워낙 감각이 뛰어나기에 잡념만 없으면 최소 2승은 하지 않을까 싶다."

―골프 할 때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운이 따르지 않아 보기를 할 때도 웃어넘기면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대범함이다. 싱글을 치는 아마 골퍼가 보기를 하나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라고 화를 낸다면 금세 망가지게 된다. 프로도 마찬가지다. 기술적으로는 기본 중의 기본인 그립부터 정확하게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아마 골퍼들을 보면 제대로 그립을 잡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