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간 이식수술 선배로서 마음의 짐 덜어줘요"

"정말 언니를 위하는 일이 뭘까 생각해봐. 효선씨가 빨리 회복해서 건강하게 사는 거 아니겠어?"

지난달 30일 서울아산병원 104병동 7호실을 찾은 이순남(55·주부)씨가 간 이식수술을 받은 이효선(25)씨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아파서 언니가 고생한 게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효선씨도 다정하게 다독여주는 이씨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효선씨는 윌슨씨병(구리가 체외로 배출되지 않고 간에 달라붙는 병) 때문에 지난해 10월 간 이식수술을 했다. 언니 이효임(29)씨 간을 부분 이식받아 목숨을 건졌지만 언니에게 큰 수술을 받게 했다는 미안함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효선씨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 10분을 말하기 힘든데도 이날 이순남씨와는 20분 넘게 이야기를 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간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이순남씨를 '천사'나 '왕비'라고 부른다.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큰언니 같기 때문이다. 이씨는 2007년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이곳에서 간 이식수술 환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멘토(mentor·조언해주는 사람)로 활동했다.

이씨는 간경화 말기로 사경을 헤매던 2005년 10월 25세이던 딸에게서 간을 부분 이식받았다. 내가 살기 위해 딸 몸에 흉터를 남겼다는 생각이 이씨를 괴롭혔다. "수술 직전까지 생각했어요. '지금 벼락이 떨어져서 내가 죽으면 우리 딸애는 고생하지 않을 텐데'라고…."

수술을 마치고 건강을 되찾은 이씨는 곧 봉사활동에 나섰다. "살았다는 기쁨과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는 게 저 혼자만은 아니란 걸 알았거든요."

3년간 봉사활동을 한 이씨는 작년에 수술한 허경욱(59)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둘째딸 간을 이식받고 괴로워하던 허씨에게 이씨는 말했다. "저도 딸에게서 간을 받았어요. 우리 모두 '죄인'이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사는지가 아닐까요." 그 말을 들은 허씨는 안정을 되찾았고, 지금은 인터넷 카페에서 이씨처럼 다른 간 이식수술 환자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다.

간 이식수술은 한 번 하는 데 12∼15시간이 걸리는데다 주로 가족이나 친지의 간을 받기 때문에 환자의 심적 부담이 크다. 이식수술을 경험한 사람들의 멘토링(조언)은 그래서 중요하다. 서울아산병원 하희선(50) 장기 이식 전문간호사는 "이식을 앞두고 죽음의 공포에 떠는 환자들에게 수술에 성공한 사람들 얘기는 '나도 건강히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고 했다.

이씨가 병원을 찾는 날은 1주일에 하루지만 환자와 가족들은 이씨에게 수시로 전화를 건다. 잠이 안 와 괴롭다는 환자, 밥만 쳐다봐도 눈물이 난다는 환자, 간 이식 받은 뒤 난폭해졌다는 환자까지 제각각이다. 아무 때나 상담에 응하는 이씨에게 딸은 늘 "엄마 몸부터 챙겨"라고 핀잔을 준다. 이씨 대답은 정해져 있다. "난 건강해졌잖아. 얘, 이분들 답답한 마음을 내가 안 들어드리면 누가 들어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