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밭·뉴욕제과·제3한강교… 세대마다 다른 '강남'

서울 강남지역은 세대별 기억의 단층(斷層)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다. 60대 이상은 '서울'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면 채소밭과 과수원이 펼쳐지던 '경기도'로 기억하고, 40~50대는 서초동의 향나무와 '뉴욕제과' '국기원'이 강남의 이정표 역할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20~30대는 '영동(永東)대교'의 '영동'이 '영등포의 동쪽'을 뜻한다는 걸 모른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강홍빈)이 2월 27일까지 개최하는 '강남 40년:영동에서 강남으로' 특별전은 강남지역의 변화상을 사진과 지도, 항공사진, 가요 앨범과 잡지 등을 동원해 파노라마처럼 펼쳐놓는다.

◆조용한 농촌이 거대한 공사장으로

한적한 농촌이었던 현재의 강남·서초구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가 착공되고, 1970년 이 다리와 연결된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였다. 고속도로 좌우로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이르는 논밭과 들판이 거대한 공사장으로 변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강남 개발에 나선 것은 종로·중·용산구 등 강북 도심이 과밀화되면서 한강 남쪽으로의 진출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강남지역은 '영동' '남서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한 동네에 '남서울호텔' '영동시장' '강남역'이 동시에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지는 강북, 뜨는 강남

당시 서울시의 정책은 '강북은 죄고, 강남은 푸는' 것이었다. 1971년 서울시는 논현동에 12·15평짜리 아파트 12개 동 360가구를 건설해 무주택 공무원들에게 분양했다. 나중에는 법원·검찰청도 강남으로 이전했다. 이어 경기고, 휘문중·고, 서울고 등 강북도심의 학교들이 대거 강남으로 옮겨갔고 이른바 '8학군'을 형성했다.

또 강북엔 유흥업소, 백화점 등의 신규시설이 불허되면서 규제를 피하고 각종 혜택을 받기 위해 술집, 다방 등이 대거 강남으로 이동했다. 1963년 3.3㎡(1평)당 400원이던 강남 신사동의 땅값은 1979년 1000배 뛴 40만원으로 수직상승했다. 1985년 무렵 서울 전체의 아파트 비율은 26.5%였으나 강남지역은 72.7%였다. 강남·서초구는 1995년 거주민 '100만명 시대'를 열었다.

◆추억 불러오는 전시품

전시장에는 압구정동에 배밭과 현대아파트가 공존하던 모습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착공식 등 기록사진 그리고 사진가 10여명이 최근 촬영한 강남지역의 대형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또 양재꽃시장, 동작역, 반포 서래섬, 잠원동 한강공원 등 12곳을 1954년부터 최근까지 시차를 두고 8차례씩 촬영해 시대에 따른 변화를 보여주는 항공사진 등이 선보인다. 서울시 도시계획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각종 도면들과 함께 가수 혜은이씨의 '제3한강교'와 주현미씨의 '비 내리는 영동교' 앨범, 최희준·서영춘·장미화씨 등이 출연하는 것을 알리는 강남지역 나이트클럽 포스터 등 생활사 전시품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박현욱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운영과장은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1970년대 이후 서울의 도시성장사를 강남 40년의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도록 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관람은 무료. (02) 724-02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