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모습 그대로 누워있는 금관

전시장은 1500년 전 '황금(黃金)의 나라' 신라를 호령했던 마립간 부부의 무덤 속 그대로였다. 찬란한 왕비의 금관은 출토 상태 그대로 목관(木棺) 속에 놓여 있고, 벽장마다 겹겹이 쌓인 각종 토기들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산더미 같은 철제무기들과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수천 점의 황금 장신구….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은 막대한 물량의 전시유물 앞에서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이 국내 최대 왕릉인 경주 황남대총(皇南大塚)을 주제로 열고 있는 《신라왕, 왕비와 함께 잠들다》전(展)은 1973~1975년 발굴된 황남대총의 거대한 실체를 실감케 한다. 지난 9~10월 개최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황남대총 특별전》이 명품 위주의 감상 전시였다면, 이번 경주박물관 전시는 5만8000여점이나 되는 출토 유물 중 전시 가능한 5만2000여점을 모두 전시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황남대총은 두 개의 무덤이 남북으로 맞붙어 있는 쌍분(雙墳)으로 남북 길이가 120m, 동서 지름이 80m에 달한다. 전시는 신라 왕릉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남분(왕릉)과 북분(왕비릉)을 나누어 무덤 속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영훈 관장은 "1500년 전 신라인들이 왕과 왕비의 장사를 지낸 것처럼 21세기에 다시 부장(副葬)하듯 출토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유물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관람객들이 왕의 무덤인 남분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목관 속을 둘러본 뒤 왕비의 무덤인 북분의 봉토를 통해 빠져나오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입구에 들어서면 왕의 부장품들이 먼저 시선을 붙든다. 왕의 저승길 밥상으로 차려졌던 각종 음식들도 한쪽 벽면에 빼곡하다. 남분 봉토에 묻혀 있던 큰 항아리 속에서 쏟아져 나온 소·닭·오리 등 각종 동물의 뼈와 상어·조기·북어 등 물고기 뼈, 다슬기·배말·홍합·오분자기 등의 조개껍데기다.

전시의 백미는 목관 속에 눕혀진 채 관람객을 맞고 있는 왕비의 금관이다. 신라 금관이 누운 상태로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특별전을 보기 위해 경주를 일부러 찾았다는 일본 고고학자 오타케 히로유키(大竹弘之)씨는 "황남대총에서 엄청난 양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신라 왕릉의 위상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고 감탄했다. 13~15일에는 비단벌레로 장식된 말안장 꾸미개 실물이 최초로 공개되며, 13·20·27일에는 황남대총 발굴에 직접 참가했던 김정기 박사 등 전문가들의 강연회가 열린다. 전시는 2월 6일까지 이어진다. (054)740-7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