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낙선]블래터 '보이지 않는 힘' 작용

결국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정몽준 부회장(60)의 날개를 꺾었다.

정 부회장이 5선 도전에 실패했다. 6일(한국시각) 카타르 도하 쉐라톤호텔에서 벌어진 아시아축구연맹(AFC) 몫 FIFA 부회장 선거에서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36)에 패했다. 총 투표수 45표 가운데 정 부회장은 20표를 얻어 25표의 알 후세인 왕자에 무릎을 꿇었다. 1994년 FIFA 부회장에 당선된 그는 이로써 FIFA 부회장과 집행위원 자격을 모두 잃었다. FIFA 올림픽위원장에서도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정 부회장은 최근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여러 번 해봤고, 모든 선거는 쉬운 선거가 없고 다 어렵지만, 이번 선거를 보면 이런 선거가 다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요르단 알리 왕자는 나의 오랜 지인인 요르단 압둘라 국왕의 동생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블래터 FIFA 회장과 쿠웨이트의 아흐메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이 배후에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걱정스러운 일로, 사실이 아니길 빈다'고 했다.

블래터 회장은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정 부회장은 당초 단독 입후보를 예상했다. 하지만 뜻밖의 도전자를 만났다. 그의 출마를 종용한 게 블래터 회장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제기됐다. 아흐메드 OCA 회장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중동이 결집했다.

특히 블래터 회장이 나서자 선거 판도가 요동쳤다. FIFA 회장은 '지구촌 축구 대통령'이다. 단일 종목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유일하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영향력 밖에 있다.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예산이 천문학적이다. FIFA 예산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있고, 그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블래터 회장이 움직이면 돈이 덩달아 움직인다.

그는 AFC 총회가 열린 카타르 도하에서 '정몽준 낙선'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 협회장과 면담하는 장면이 수차례 목격됐다. 특히 중동세 결집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럼 블래터 회장은 왜 정 부회장의 낙선을 위해 뛰었을까. 정 부회장은 FIFA 내에서 야당으로 분류된다. 2002년 5월 블래터 회장의 재선 당시 반대편에 섰다. 레나르트 요한손 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이사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CAF) 회장과 '개혁파 진영'에서 의기투합했다. 둘은 소원했다. 이후 관계가 복원됐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수면 아래에선 라이벌이었다. 사사건건 대립했다. 함맘 AFC 회장과 충돌 당시 블래터 회장은 함맘의 손을 들어줬고, 지난달 2022년 월드컵 개최지 투표에서도 한국을 외면했다.

1998년 FIFA 회장에 선출된 블래터 회장은 올해 4선에 도전한다. 정 부회장은 가장 강력한 정적이다. 국제 축구계에선 블래터 회장의 유일한 대항마로 정 부회장을 꼽고 있다. 블래터 회장으로선 정 부회장이 사라져야 무혈입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그의 힘은 위력을 발휘했다. 정 부회장의 5선 도전에 비수를 꽂았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