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썩은 동아줄

〈제4보〉(43~53)=누구나 12가지 동물 중 하나의 '띠'를 갖는다. 12년마다 찾아오는 자신의 해를 다섯 번째 맞이하는 해가 '환갑'이다. 바둑의 세계에선 두 번째로 맞는 24세 무렵이 최고의 절정기로 꼽힌다. 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고수(高手)들이 그랬다. 올해는 영특하고 잽싼 이미지를 지닌 토끼의 해. 멍타이링(孟泰齡)이 바로 87년생 토끼띠다. 한국에도 윤준상 이영구 홍성지 고근태 등 비상(飛上)을 준비 중인 '87토끼 유망주'들이 즐비하다.

43, 45는 내친걸음. 흑의 포위망이 썩은 동아줄같이 너덜거린다. 하지만 사활이 걸린 만큼 백도 외줄타기를 하듯 조심스럽다. 46의 끼움수와 48의 단수에 각 23분씩 도합 46분을 쏟아부은 것도 그런 이유. 쌍방 모두 이곳이 전체 형세를 결정지을 승부처임을 싸움꾼들 특유의 후각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기어이 문제수가 터졌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52가 후회막급의 한 수였다. 참고도 3까지, 빵 때림을 주는 대신 좌하귀를 접수하는 것. 흑4의 급공엔 5가 안성맞춤이어서 이랬으면 백의 우세였다. 쉬운 길을 놓치고 53을 허용해선 곡예(曲藝) 같은 좌하 일대 전투가 한참 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