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가톨릭大서 커피점 운영하는 10대 소녀들
부모로부터 매 맞거나 성폭행 당하고, 가출 경험
성심수도회 도움으로 창업 "돈 모아 꼭 대학 갈래요"
지난달 29일 아침
경기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가톨릭대 기슨관 1층 휴게실 안쪽 작은 커피전문점에서 체크무늬 윗옷을 맞춰 입은 10대 여자아이 4명이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커피동물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수줍게 인사하는 아이들 윗옷 앞자락엔 동물 얼굴 모양의 명찰이 달렸다. 바리스타(barista·즉석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사람) 이은경(18)양과 전솔희(17)양 명찰에는 '퓨마'와 '냥이'(고양이)라고 쓰여 있었다. 카운터를 맡은 여모(18)양은 '강아지', 커피와 머핀을 나르는 신모(18)양은 '오리'였다. 각자 별명을 이름 대신 써놓은 것이다.
일손을 거들던 사회복지사 김선옥(31)씨는 "별명을 쓰는 쪽이 마음 편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아픔이 있다. 부모에게 매 맞고 살았거나 가난에 울고 성폭행당한 소녀, 가출해 거리를 헤매던 소녀들이다.
2009년 9월 문을 연 '커피동물원'은 가톨릭 성심수도회가 운영하는 '성심디딤돌 청소년쉼터'(이하 성심 쉼터)가 설립을 도왔다. 성심쉼터는 집을 나와 6개월 이상 떠돈 10대 여자 청소년들이 머무르는 쉼터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엔 2년까지 이곳에서 지내며 앞날을 준비한다.
커피전문점을 열자는 아이디어는 2007년 11월에 나왔다. 당시 쉼터에 머무르던 '미코'(미친 코끼리) 최모(20)양이 YMCA가 주관한 바리스타 교육에 참가한 게 계기가 됐다. 성심쉼터 소장인 최일심 수녀는 "커피 만드는 일에 흥미를 보이기에 '커피전문점을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매주 한 번 '창업회의'를 했다. '커피동물원'이란 이름은 쉼터에 살던 아이들 별명에서 나왔다. 외모나 성격에 따라 서로 '비버'니 '하마'니 하고 불렀다.
돈도 없고 공간도 없었지만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나왔다. 서울시늘푸른여성지원센터가 창업자금 등으로 3년간 4400만원가량을 내줬다. 가톨릭대는 20㎡ 규모 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매장 인테리어와 커피제조기 구입비용은 지역에서 후원자들이 나섰다. 그동안 소녀들은 열심히 커피 만들고 머핀 굽는 법을 배웠고, 재작년 9월 마침내 가게 문을 열었다.
쉼터 아이들이 부침 많은 삶을 사는 터라 그간 종업원은 수없이 바뀌었다. 처음 커피동물원을 차렸던 '미코' 최양은 간호대에 진학했고, 창업을 도왔던 '외계인' 정모(19)양은 전문 바리스타가 돼 작년 2월 취업에 성공했다.
현재 커피동물원 바리스타인 솔희와 은경이는 작년 8월 나란히 어시스턴트(보조) 일부터 시작해서 바리스타가 됐다. 두 아이 모두 새어머니가 들어오면서 심한 갈등을 겪다가 쉼터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솔희는 "커피동물원에서 돈을 모아 대학 회계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여자 경호원을 꿈꿨던 은경이는 전문 바리스타가 되기로 목표를 바꿨다. "매일 대학생 손님들을 봐서 그런지, 예전엔 대학 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대학에 무척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