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돌던 영등포공고 학생들, 난타 자선 공연 "싸늘한 시선 대신 박수받으니 짜릿하죠"

    입력 : 2011.01.08 03:02

    싸움·오락에 빠졌던 아이들 "우리에게도 꿈이 생겼어요"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공고 대강당에서 난타 동아리‘리듬 앤 스쿨’소속 학생들이 쓰레기 분리수거통 등을 두드리며 연습을 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12월 29일 서울 가양동 영등포공업고등학교 대강당에서 학생 10여 명이 드럼통과 심벌즈, 쓰레기 분리수거통을 옮기는가 싶더니 이내 '두둥 두둥' 소리를 내며 난타 공연을 시작했다. 정신 없이 북을 두드리는 학생들 눈빛에서 뜨거운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이 학생들은 한때 흡연과 음주,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았다. 2009년 이 학교 건축과 교사 한국희(50)씨가 난타 동아리 '리듬 앤 스쿨'을 만들면서 학생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한씨는 "수업시간에 잠을 깨우면 선생님에게 대들기 일쑤고, 1년에 70~100명이 자퇴하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이었다"며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난타 지도는 학창시절 밴드부에서 드럼을 쳤던 한씨 제자 정규하(36)씨가 맡았다. 현재 타악극단 대표인 정씨는 1주일에 2~3번 모교를 찾아가 후배들을 가르친다. "나도 학창시절 가정문제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은사인 한 선생님 뜻에 따라 후배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했어요."

    박성우(가명·19)군은 2009년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한 뒤 집에 할머니만 남긴 채 가출했다. 10일 넘게 결석하다 학교에 나온 박군은 "선생님, 마음 정리 좀 하겠습니다"며 자퇴서를 내밀었다. 한씨는 "네가 있을 곳은 교실"이라며 박군을 난타 동아리로 데려갔다. 한씨는 비트박스(입으로 다양한 소리를 내는 연주기법)를 잘하고 가수가 꿈인 박군을 눈여겨봤었다.

    동아리 회원을 하나 둘 모았지만 첫해 19명 중 9명이 중간에 그만뒀다. 한씨는 "격려하러 찾아갔다가 흡연실로 변한 연습실을 보고 실망만 안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고 했다. 경로원을 찾아 공연하기로 약속한 날에는 아이들 절반이 나오지 않아 공연이 무산될 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점차 북을 치며 스트레스를 풀어가는 법을 터득해갔다.

    오정석(19)군은 "전에는 싸움이나 오락에 빠져 세상을 원망하면서 살았다"며 "난타를 배운 이후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세상에 재밌는 일이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게임 중독이었던 졸업생 김윤수(20)씨는 재학 중 난타를 하면서 숨겨진 음악 재능을 발견해 작년 9월 정씨의 타악극단에 수습사원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세계 최고 드러머'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됐고, 내년 음악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학생들은 2009년부터 매년 어버이날과 연말이 되면 서울 강서구 노인복지회관과 장애인 복지관에서 자선 공연을 한다. 한씨는 "지난 졸업식 때 다 큰 사내 녀석들이 '사랑한다'며 안겨와 참 행복했다"며 "아이들에게 생긴 기적을 바라보는 게 요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