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군복 입고 조국에서 만난 형제

어릴 적 부모의 이혼과 음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가난을 겪으며 서로를 의지했던 형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형은 아버지 뒤를 이어 한국에서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했고, 동생은 미국에서 어머니 곁을 지키며 치과의사의 꿈을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둘은 운명처럼 조국을 지키는 현장에서 다시 만났다. 육군 제1군수지원사령부 이규민(25) 병장과 주한 미 2사단의 이규원(23) 일병 형제 이야기다.

형제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는 이혼했고, 둘은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와 살았다. 형편은 넉넉지 못했고 둘은 언제나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게다가 형제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전락했다.

고등학교 때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죽은 줄 알고 있던 어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둘은 어머니의 도움 아래 차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형은 버클리 음대에, 동생은 버지니아주립대 치과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한국에 혼자 있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왔고, 형제가 미처 도착하기 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형제는 떨어져 살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묻고 산소를 지킬 사람이 있어야 했어요.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순 없잖아요. 두 달 후면 영주권이 나올 예정이었지만 한국에 남기로 했습니다."(형) 형은 아버지를 묻고 이듬해 봄 군에 자원입대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렸지만 조국에 남겠다는 그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2009년 말, 동생과 함께 있던 어머니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형은 자신의 입대로 어머니가 속앓이를 하다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자책감에 시달렸다. 그를 도와준 것은 전우들이었다. 이 병장은 "전우들과 소대장님의 관심과 격려가 없었다면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 있을 때 세계댄스대회 우승팀 리더이기도 했던 그는 육군의 뮤지컬 '생명의 항해'의 배우로 활약하는 등 의욕 있게 군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의 동생도 작년 2월 미군에 지원했고, 넉 달 뒤인 6월 한국을 지키는 미 2사단에 배치돼 고국으로 건너왔다. 동생은 "제대하면 훌륭한 키보드 연주자가 되겠다는 형 못지않게 열심히 살려고 야간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