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보상 노린 신종 투기 들끓는 보금자리주택 예정지

지난 4일 오후 8시쯤 경기도 하남시 광암동 '119안전센터' 앞. 봉고차 1대가 미끄러져 들어오더니 트레이닝복 차림에 오리털 점퍼를 입은 건장한 청년 7명이 내렸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4차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된 하남 감북지구의 불법 투기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투입한 감시단이었다.

감시단은 2~3명씩 3개조로 나뉘어 미리 정한 구역으로 흩어졌다. 감시단 정원교 팀장은 "총 14명이 오전과 오후 2교대로 24시간 내내 감북지구 267만㎡를 샅샅이 훑고 다닌다"고 말했다.

오후 10시쯤 감시단이 찾은 곳은 감북동 일지산공원 남쪽의 잣나무 단지. 현장에는 모 종교단체가 심은 잣나무 30여 그루가 드문드문 서 있었다. 이 종교단체는 "올봄에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심었다"고 주장하지만 정 팀장은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오늘 오전조가 적발했다"고 말했다. 감시단이 이 나무를 적발하지 않았으면 나무 주인은 수천만원의 보상금과 이전비를 받게 된다.

정부가 시세보다 싼 서민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 개발 중인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지구가 보상을 노린 투기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보상비가 늘면 분양원가가 올라 값싼 주택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사업시행자인 LH가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서 투기꾼과 쫓고 쫓기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보상 투기 온상 된 보금자리주택

현재 정부가 지정한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지구는 18곳. 이 중 국유지가 많은 서울 강남과 서초지구를 제외한 대부분 지구에서 투기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보상이 이뤄졌던 위례신도시에서는 투기 목적의 비닐하우스만 1700여동이 적발됐고, 무단으로 반입한 벌통도 8000여개에 달했다. LH 관계자는 "당시 2000여명이 보상을 요구했지만 정작 보상 대상자는 절반도 안 됐다"고 말했다. 절반은 투기꾼이었던 셈이다.

최근 보상 투기꾼이 활개치는 대표적인 곳은 미사·감일·감북지구 등 3개 지구가 한꺼번에 지정된 경기 하남시다. LH는 이들 지구에 대해 10~2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24시간 감시에 나서고 있지만 투기 행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감일지구는 작년 4월부터 8개월간 520여건의 투기행위가 적발됐다. 하루 평균 2건이 넘는다. 미사지구에서도 250여건의 불법 행위가 단속에 걸렸다. 이종인 LH 차장은 "지구 지정 이후에 설치된 시설물은 일부 생계형을 제외하면 대부분 보상을 노린 투기목적"이라고 말했다.

◆'벌통 투기', '닭 투기'에 '개 투기'까지 등장

투기 수법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양봉업 보상을 노린 벌통 투기는 가장 일반적인 수법. 감일지구의 경우 작년 4월 이후 적발된 불법 벌통만 864개에 달한다.

지난해 말에는 과일나무 묘목 2000그루를 무더기로 심었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과수원으로 인정받으면 개발 후 상업용지를 싸게 받는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감시단에 적발된 나무들은 모두 말라 죽었다. 감시단 박승범 과장은 "나무를 심었던 주인이 당당하게 '투기하려고 심었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축산업 보상을 노리고 닭, 개 등 가축을 몰래 풀어놓는 경우도 있다. 감일지구에서는 지난 7개월 동안 닭 921마리, 개 640마리, 오리 504마리 등이 적발됐다. 닭(200마리), 개(20마리) 등 가축을 일정 기준 이상으로 기르면 축산업으로 인정돼 이전비와 함께 상업용지를 싸게 받을 수 있다. 전해승 LH 팀장은 "동물을 풀어놓는다고 보상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투기 못 막으면 혈세 낭비

보금자리주택지구나 신도시의 경우 땅과 건물 소유자 외에도 축산·양봉·농업 등 각종 영업권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영업권은 종류가 다양하고 실제 영업 여부를 가려내기도 쉽지 않아 투기꾼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고 있다. LH 관계자는 "투기꾼들이 각종 서류를 꾸미고 현장에서 영업했던 것처럼 위장하는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LH는 주민 신고포상제, 현장 내 CCTV 설치, 투기꾼 명단 관리 등 투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금자리주택지구의 현재 추정 보상비만 20조원에 육박하는 데다 LH가 경영난까지 겪고 있어 과도한 보상비 누수는 사업에 큰 차질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LH하남미사사업단 이기열 부단장은 "투기꾼에 대한 보상비 지급은 결국 혈세 낭비이자 분양가 상승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돌아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