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유혹적 手順

〈제5보〉(54~68)=요즘 바둑계 정상권의 교체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처럼 10년 이상 일인자로 군림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다. 누구나 20대 초반 절정기를 맞지만 후배들의 거센 추격 속에 2·3년을 버티기 쉽지 않다. 그러나 안조영은 28세의 나이에 첫 타이틀(원익배)을 땄고, 서른셋인 요즘에도 10위권 언저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끈기와 뒷심의 기사'로 불리는 것은 항상 제한시간을 소진하며 끝까지 버티기 때문만은 아니다.

54부터 63까지는 백의 절대 권리. 지난 보(譜)에서 결정타를 놓친 것도 이 통쾌한 수순에 대한 유혹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 놓고 64로 좌변을 살자 이제는 좌하귀 흑백 서로의 생사가 현안(懸案)으로 떠올랐다. 65의 치중(置中) 때 백이 참고도 1, 3으로 파호해 가는 것은 흑4를 당해 백도 자체 삶이 급해진다.

10 이후 패(覇)가 될 공산이 큰데 흑의 자체 팻감이 널려 있다. 백이 A로 살면 흑은 B로 날씬하게 탈출한다. 결국 66, 67로 각생(各生)했다. 타협인 동시에 필연의 진행이기도 하다. 그리고 68. 노리고 노리던 중앙 절단의 수순이 백에게 돌아왔다. 일견 흑이 수습 불능의 난감한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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