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외벽에 풀로 붙인 그림 바람에 찢겨도 그게 다 작품"

한파가 수그러들지 않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에 팝 아티스트 이동기가 미국인 작가 잰슨 래피사다와 함께 나타났다. 일본 만화 아톰과 미국 만화 미키마우스에서 가져온 캐릭터 '아토마우스'를 캔버스에 표현해온 이동기는 이날 '스트리트 아트'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는 길거리 벽 같은 곳에 스프레이 등으로 낙서처럼 그리는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의 일종이다.

이동기는 스트리트 아트에 나선 이유에 대해 "그동안 잃어버렸던 뭔가를 다시 찾고 싶었다"며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니라 자유로운 공간에서 작업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작년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그로서는 숨통을 트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작가의 작품은 알게 모르게 컬렉터를 염두에 두고 제작되기 때문에 그런 것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을 내보인 것이다. 판매 여부와 관계없이 그리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는 것으로, 실제로 이동기는 이번 작품을 신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을 플래툰 쿤스트할레 외벽에 풀로 붙이면 겨울 강풍이나 눈바람에 찢겨나갈지도 모르지만 그것 자체를 즐기겠다는 것이다. 이동기는 "누가 내 작품에 낙서를 하고 바람이 찢는다 해도 그 과정 자체가 이번 작품에 다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래피사다는 비행기 안전 수칙 안내서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목판화 등으로 제작했다. 이 작업은 각종 위험이 많은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 래피사다는 "갤러리나 미술관은 일부 관람객만 작가의 작품을 향유할 수 있지만 스트리트 아트는 보다 많은 사람이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서 외벽에 풀을 붙여 설치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풀을 바르는 즉시 얼어붙어 계획보다 설치 면적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은 이동기와 래피사다의 이질적인 작품이 한 몸을 이루듯 어우러졌다. 작품은 선박용 컨테이너로 지어진 플래툰 쿤스트할레의 도회적인 외관과 어울려 인상적인 이미지를 남긴다. 이동기는 "작품을 언제까지 붙여놓을지도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02)3447-1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