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정년퇴임한 '1호 화재감식요원' 김윤회씨 "31년간 3000곳 넘는 화재현장 누볐죠"

지난달 31일 정년 퇴임한 김윤회(60)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안전사고조사 TF(태스크포스)팀장은 어릴 때 꿈이 과학자였다. 대학에서 물리교육학을 전공하고 고교 물리교사가 됐지만 연구와 실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교사생활을 2년 만에 그만두고 1979년 국과수에 들어갔다. 이후 31년간 현장과 연구실을 누비며 사건·사고를 조사했다. '어릴 때 꿈꿨던 그런 과학자'는 아니지만 그토록 하고 싶던 연구와 실험은 실컷 했다.

김씨는 '국과수 국내 1호 화재감식요원'이다. 그가 국과수 물리연구실에서 일하던 1980년대 중반만 해도 경찰이 수거해 갖다주는 증거물만 들여다보는 것이 화재사건 감식의 전부였다. '현장에 가서 보면 화인(火因)을 제대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국과수 직원으로는 처음으로 화재현장에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원인 규명하는 확률이 높아지자, 그를 두고 "사서 고생한다"고 했던 동료도 하나 둘 현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1999), 이천 냉동창고 화재(2008), 대구지하철 화재 (2003) 등 대형 참사로 꼽히는 10건 중 9건의 현장에 그가 있었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거나 화인이 명확지 않아 전문가의 과학적 소견이 필요한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는 게 임무다. 지난해 발생한 화재 3만6000여건 중 3000여건을 김씨와 그의 팀원이 조사했다.

화재 현장에 다니다 보니 재와 먼지를 뒤집어쓰고 불에 탄 살 냄새를 맡는 게 일상이다. 피부병도 생겼다. 그는 "현장에 들어갔다 나온 모습은 막 탄광에서 나온 광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현장은 악조건인 게 당연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이 말끔하게 타버려 아무 증거를 찾을 수 없을 때도 있었어요. 화재 사고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럴 때면 너무 허탈하고 씁쓸했죠."

과학수사가 드라마·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면서 그에게 '드라마에선 다 하던데 왜 못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김씨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국과수에서 쓰지 않는 구식 방법을 대단한 것처럼 보여주거나, 지금 기술로 불가능한 기법들도 많이 나온다"고 했다. 대중적 재미를 위해 극적으로 풀어나가려다 보니 허구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 드라마 'CSI과학수사대'를 안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