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사퇴 … 정치권에 강한 불만 표현] "사생활 유린" "인생 부정 당해" 격한 울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12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대통령께 누를 끼치고 국정 혼란을 초래하고 싶지 않다"며 머리를 숙였지만, 인사청문회에서 의혹을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사퇴 압박을 가한 정치권에 대해선 봇물 터진 듯 울분을 드러냈다. 정 후보자가 지난 열흘간 출근해온 서울 통의동의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회견은 여야가 문제 삼은 논란을 하나하나 반박·해명하는 '나 홀로 청문회장'을 방불케 했다.

정 후보자는 "감사원장 후보자 지명을 계기로 저의 경력과 재산, 사생활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철저하게 유린됐다"며 "국정의 책임을 맡은 여당까지 진상 확인도 없이 불문곡직 사퇴를 촉구했다"고 말했다. "단 한 분의 청문위원이라도 계신다면 끝까지 청문회에 임해 진정성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말은 들어보는 것이 도리" "청문회 없이 사퇴를 요구한 것은 재판 없이 사형선고를 한 것" "청문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것은 법치주의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 "저와 가족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부정당했다"며 격한 표현을 이어갔다. 장자에 나오는 "두루미는 날마다 멱감지 않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새까맣다(鵠不日浴而白, 烏不日黔而黑)"는 말도 덧붙였다.

정 후보자는 위장전입과 호화계 참여 등 부정한 재산증식 의혹에 대해 "집이 없던 시절 전세기간 만료로 여러 차례 이사했다"며 "철저히 자기 관리하며 검소하게 살아왔다"고 했다. 법무법인 바른에서 7개월간 받은 6억9000만원의 급여에 대해선 명세서까지 복사해 배포하며 "법조 30년 경력의 변호사 급여라는 실정을 아는 사람들은 용인하리라 본다"며 "다만 서민들이 보기에 큰 액수라 곤혹스러웠다"고 했다. 학위취득의 적법성 논란에 대해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한 제가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학위를 취득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검차장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BBK 관련 의혹을 덮어줬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평생 정치에 곁눈질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고, 민정수석 당시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관여 의혹에 대해선 "결코 아는 바 없다. 민정수석이 한가하게 사소한 보고까지 받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 비서 출신이어서 감사원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평생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직분에만 충실했으므로 국민 여러분께 (제 의지를) 납득시켜 드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는 A4 용지 5장 분량 '사퇴의 변'을 이날 새벽 자택에서 작성한 뒤 오전에 출근해 다듬었다고 했다. 잠을 설친 듯 창백했고, 검정 넥타이를 맸다. 회견 중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회견 후 1시간쯤 사무실에 머무르다 떠나며 취재진에게 "이제 홀가분하다. 집착을 버리니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자신이 맡고 있던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직도 사퇴하며 "자연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법무공단 퇴임식에선 빨간 넥타이로 바꿔 맨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