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승이 그린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
입력 : 2011.01.13 17:28
한반도 내륙지방인 안동에 사는 김규승의 근작은 한결같이 남단에 자리한 제주도의 풍경이다. 바다가 없는 곳에서 늘 바다를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간결한 수묵담채로 제주도의 사계절을 가득 담고 있는 풍경화다. 작가는 수년 동안 제주도를 다니면서 그곳의 모든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를 탐사하고 그 여정을 기록적 차원에서 그림으로 남기고 있는 듯도 하다. 아니 그보다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된 그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커 보인다. 그래서 가능한 한 그는 제주도 자연을 날것 그대로 담아 보는 이의 시선에 안기고 싶어한다. 그 풍경이 전해주는 숭고함과 같은 감정을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제주도에 들어와 서있는 듯한 환각, 바람 부는 황량한 들판에, 돌무더기 사이에 문득 서있는 듯한 경험을 전달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화면은 수평으로 마냥 길어 관자의 신체를 포용하듯 자리했다. 그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 가거나 저 풍경과 독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실경을 사생한 이 그림은 수채화와 흡사한 산뜻하고 투명한 색감과 현장의 생동감 있는 기운을 여과없이 안기는 편이다. 수묵담채라기 보다 수채화 성격이 좀 더 강해 보인다. 그래서 먹과 모필의 자취가 상대적으로 드문 것이 그의 작업의 독자성이자 그만의 감성의 표출이다.
녹색과 파랑색,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는 이 풍경은 시원하고 청량하다. 그것은 제주도라는 공간이 안겨주는 힘, 감정이자 동시에 그 풍경을 그런 스케일감각과 공간감으로 전이시키려는 그림으로 인해 가능하다. 따라서 파노라마구도로 펼쳐진 화면에는 수평으로 길게 자리한 푸른 바다와 돌과 풀이 어지러이 펼쳐진 전경으로 이루어졌다. 돌을 그리기 위한 작가의 시선은 좀 더 아래로, 바닥으로 내려간다.
바닥에 바짝 붙어 조망한 이 시선에서 제주도라는 섬의 심장에, 대지라는 살에 자신의 신체를 밀착시켜 보고자 하는 어떤 의지가 느껴진다. 그 시선에서 이 작가가 제주도에 대해 지니고 있는 모종의 편애가 느껴진다. 원경으로 자리한 섬의 신체성과 등대, 밋밋한 평원이 고즈넉하다면 근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시커먼 현무암 덩어리들이다. 원경이 여성적으로 부드럽고 관능적이라면 전경은 거칠고 투박하며 무겁다. 이 대비적 속성으로 화면은 긴장감을 지닌다. 또한 그것은 바다와 돌로 가득한 제주도의 특성을 한 눈에 안긴다.
그러니까 작가는 새삼 제주도라는 공간에서 매력적인 돌을 만났고 그 돌이 자연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에 매료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저 거친 돌과 바다의 대비가 문득 제주도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다간 무수한 사람들의 신산한 삶을 떠올려 주었던 듯 하다. 처연한 바다와 거친 돌은 아름답고 비극적이며 더없이 건강하고 강인하기도 하다. 작가는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새삼 제주도라는 공간을, 그 역사를 그리고 그곳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이해해본다.
자신의 익숙한 삶의 공간과는 다른 이 섬이 그에게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그림이 김규승의 근작이다. 제주도 풍경을 통해 결국 자신만이 보고 느낀 것에 토로가 그것이다.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살 앞에 자리한 광활한 대상과의 독대일 것이다. 신체 밖의 저 세계를 내 신체 안으로 수렴하는 일이고 그 자연의 기운을 온전히 호흡하고자 하는 일이다. 내 몸과 저 자연이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가 되어 선회하는 일이다. 그와함께 그 풍경 안에 깃든 역사를 읽어내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을 그림으로 온전히 그리는 일이 풍경화일 것이다. 자연을 거대한 생명체로 인식하고 그리는 일, 그림을 그리는 ‘나’라는 존재 역시 하나의 생명체로서 저 생명체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의 깨달음 같은 것도 따라붙는다. 작가는 제주도라는 공간, 거대한 생명체에서 어떤 힘과 매혹을 만났을까?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보고자 한 것일까? 이번 근작은 그에 대한 일말의 단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