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6·25 용사 곁을 지킨 두 '천사'

부산에 사는 강순이(74)씨는 아들과 함께 1주일에 세 번씩 경남 김해 보훈요양원에 있는 남편 목진홍(80)씨를 찾는다. 간호사였던 강씨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말 부산 5육군병원에서 부상당한 남편을 만나 5년 후에 결혼했다. 강씨는 만날 때부터 머리에 박힌 포탄 파편 7개 때문에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던 남편 목씨를 59년째 보살피고 있다.

청춘을 남편에게 바친 강씨는 "똑똑했던 사람이 전쟁에서 다쳐 평생을 병상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연민의 정이 생겼죠. 간호사로서 이 사람을 더 아프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5년간 정신없이 돌보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어 결혼까지 했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강씨도 몸이 좋지 않아 5년 전에 남편을 요양병원에 보내야 했다.

남편 목씨는 서울중 5학년(현 서울고 2학년)이었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군 입대를 자원했다. 목씨는 포병부대 소위로 임관해 싸우던 중 52년 말 경기도 파주 문산전투에서 중공군의 포탄을 맞아 쓰러졌다. 당시 수도육군병원 시체 안치실에 있다가 목씨의 기침 소리를 들은 수녀 덕분에 목숨을 구한 목씨는 부산 육군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아내 강씨와 결혼한 이듬해인 1958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남편이 일할 수 없어 생계를 떠맡았던 강씨는 4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웠다. 전쟁 피란민들이 살던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서 쪽방을 구해 잡화를 파는 가게를 열었다. 남의 마당을 빌려 닭과 개도 키워봤다. 강씨는 "간호사가 돼 평생 환자를 돌보며 사는 게 어릴 적 꿈이었는데, 60년간 한 사람의 간호사로 살았다"며 웃었다.

수원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의 간호사 김순희(53)씨는 1984년 외국으로 유학 간 남편으로부터 소식이 끊겼지만 이후 시부모를 모시면서 2남매를 키워냈다. 김씨는 2006년 시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 6·25 참전용사인 시아버지 홍완표(78)씨를 5년째 홀로 보살피고 있다.

6·25 전쟁 당시 서울중 4학년(현 서울고 1학년)이었던 홍씨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1953년 간부 시험에 합격해 장교가 된 뒤 1981년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다. 홍씨는 월남전에도 참전했지만 전역 후 당뇨 합병증으로 85년쯤부터 시력을 잃었다.

홍씨는 "절망감에 혼자 죽을 생각도 많이 했지만 우리 며느리가 어린 아이를 업고서 아픈 나를 병원에 데려갔다"고 했다. 김씨는 시아버지 홍씨를 모시고 유명 신부님 강연회에 가고 성경 공부 모임이나 야간 기도회에도 갔다. 며느리 덕분에 홍씨는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홍씨가 "모두가 며느리를 '천사'라고 말한다"고 하자 김씨는 "남편이 외동이라 저 말고 시부모님을 모실 사람이 없었어요. 오히려 시부모님이 계셔서 제가 의지하며 살았지요"라고 말했다.

강순이씨와 김순희씨는 17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서울호텔에서 열리는 '서울고 총동창회 2011년 정기총회 및 신년하례회'에서 '고마운 서울 가족상'을 받는다. 홍완표씨는 입학 동기 2명과 함께 '명예졸업장'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