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 기부한 80대 할머니, 맏아들에 '한정치산' 소송당해

수백 억원대의 재산을 여러 차례 사회에 환원해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80대 할머니의 장남이 '어머니가 재산을 처분할 수 없게 해달라'는 취지로 법원에 한정치산(限定治産)선고를 청구해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아들은 법원에 의해 재산관리인으로 선임됐다가 어머니의 반발로 무효가 되는 등 양측 간 공방은 가열되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독지가 A씨는 1950년대 시작한 사업으로 모은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A씨는 수백 억원대의 재산을 사회단체 등에 기부했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장학금도 남몰래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작고한 남편은 권위 있는 학자였다. A씨는 대학교수로 성공한 두 아들에겐 재산도 일부 물려줬다.

A씨는 2009년 3월 뇌경색으로 투병한 뒤 요양시설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작년 6월 장남인 B씨가 "어머니 몸 상태가 온전치 못해 재산을 유실할 우려가 있다"며 한정치산선고를 청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B씨는 이 재판이 진행 중이던 작년 9월 "나를 어머니 재산관리인으로 선임해달라"는 사전처분을 법원에 요청해 받아들여졌으나, A씨가 즉시 항고하면서 법정싸움이 가열됐다. 차남은 어머니 편에 섰다.

A씨는 최근 열린 이 사건 재판에서 "아들에게 재산을 충분히 줬다"며 기부 의지를 거듭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의정부지법은 이 사건 항고심에서 A씨 장남에게 재산관리권을 준 사전처분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A씨의 건강과 경제적 상황을 보면 한정치산선고가 필요한지 의심스럽고, A씨가 차남을 통해 재산을 기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다.

일단 재산관리인 선임을 둘러싼 다툼에선 A씨가 이겼지만, 사건의 본안(本案)소송 격인 한정치산선고 여부에 대한 재판은 진행 중이어서 가족 간의 다툼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B씨는 "법원에 한정치산선고를 청구한 것은 어머니의 기부와는 무관한 것"이라며 "곡절이 있지만 재판이 끝나지 않아 지금은 밝히기 곤란하다"고 했다. A씨측도 소송과 관련해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정치산(限定治産)

재산의 관리나 처분이 법에 의해 제한되는 상태를 말한다. 통상 가사 사건에서 특정인에 대해 법원이 한정치산선고를 내릴 경우 민법이 정한 순위에 따라 가족 중 한 명이 후견인을 맡아 재산관리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