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외국인, 신흥국 투자 재편 중… 'Bye 코리아' 하나

지난 2009년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에서 거침없이 주식을 사들였던 외국인이 올해 들어 '팔자'로 돌아섰다. 외국인은 지난 2년간 한국에서 52조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는 등 아시아 신흥 6개국(한국·대만·인도·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에서 1247억달러(약 139조원)를 순매수(매수에서 매도를 뺀 것)하며 아시아 증시의 부활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주가 급등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조금씩 발을 빼는 모습이다. 올 들어 외국인은 인도·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에서 총 17억달러를 순매도했다. 그 결과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주가가 6~8%나 빠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인상한 이후 외국인의 매도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주(10~14일) 외국인은 100억원을 순매도하며 지난해 8월 이후 20주 만에 처음으로 순매도로 전환했다. 19일 나흘 만에 소폭 순매수로 돌아서긴 했지만 이번 주에도 500억원 이상 매도 우위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의 변심이 시작된 것일까.

◆외국인, 신흥국 포트폴리오 재편 중…한국은?

전 세계 주식시장을 놓고 보면 자금 사정은 오히려 더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지방채권 부실 우려가 제기되면서 투자자들이 채권형 펀드에서 돈을 빼내 주식형 펀드로 몰려가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의 채권형 펀드에서 147억달러가 빠져나간 반면 해외 주식형 펀드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143억달러가 들어왔다. 아울러 전 세계 펀드시장에서 지난주까지 이머징 주식형 펀드는 3주 연속, 선진국 주식형 펀드는 2주 연속 자금이 순유입됐다.

그런데도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유는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금리 인상 우려 때문이다. 또한 지난 2년간 이들 국가의 주가가 많이 뛴 데다 아시아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차익실현 욕구도 높아졌다. 아시아 신흥국에서 돈을 빼낸 외국인들은 신흥국 중에서는 브라질과 러시아 등 자원이 풍부한 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면서 브라질과 러시아 주식시장은 올 들어 각각 6%, 8% 상승했다. 글로벌 경제의 화두가 인플레이션으로 옮겨가는 추세에 맞춰 외국인 투자자들도 신흥국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은 '사자'와 '팔자' 중 어느 쪽에 속할까. 김수영 KB증권 연구원은 "한국 또한 인플레이션과 긴축 우려가 커지고 있어 외국인 자금 유입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철중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매수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소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한국의 주식 기대수익률 간의 차이인데,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외국인 매수세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국이 '신흥시장 포트폴리오 재편'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허재환 대우증권 연구원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한국과 대만은 인플레이션 압박이 덜하고, 주가 면에서도 동남아 국가보다 매력적"이라면서 동남아 신흥국을 빠져나온 자금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한국, 대만 등 동북아 신흥국으로 옮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봐도 한국 주식을 더 살 여지가 충분히 있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보유비중은 2008년 28%대까지 떨어졌다가 현재 32%대까지 올라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평균인 38%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증시 주도세력, 외국인→내국인 옮아가나

최근 며칠간의 매매 동향만으로 외국인이 돌아섰다고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올해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수 강도는 지난 2년간에 비해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신흥 아시아 국가의 인플레이션과 미국 경제의 본격적인 회복이 상대적으로 우리 증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면서도 2009~2010년과 같은 공격적인 매수세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로 환차익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었고, 과거 주가로 볼 때 더 이상 저평가를 주장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외국인의 매수세가 주춤해지더라도 증시의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지난 2005~2007년 외국인이 주식을 내다 파는 동안에도 우리 증시는 두 배 넘게 올랐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올해 외국인 대신 국내 기관과 개인이 수급의 공백을 메우면서 증시 상승을 이끌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9조원을 순매수했던 연기금은 올해 주식 비중을 더 늘릴 계획이어서 5조원 이상의 매수 여력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최근 개인들의 순매수가 증가하고 증시 대기자금이 늘어나는 등 개미들도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귀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