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계의 삶, 詩가 되어…

황국신민을 숭상하던 식민지 소년이 제주 4·3 사건 와중에 일본으로 밀항. 조총련 조직활동가로 살다가 다시 남·북한 사이의 '경계인'으로.

80평생 파란만장한 삶을 산 재일교포 1세 시인 김시종(金時鐘·82)씨가 일본의 대표적 시문학상의 하나인 '다카미 준(高見順)상' 올해의 수상자가 됐다. 작년 2월 시 35편을 모아 낸 '잃어버린 계절'이 수상작이다.

김시종씨는 1929년 함남 원산에서 출생, 일곱 살 때 외가인 제주로 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제주~광주를 오가며 학교에 다녔고,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을 숭상하는 학생이었다. 1945년 해방 때도 기쁨이 아니라 숭상해 마지않던 '가미카제(神風)의 패배'를 엄청난 상실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1947년 4·3 사건에 관련돼 1949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이후 조총련 활동을 하다가 획일주의에 환멸을 느껴 그만뒀다. 북으로부터는 배신자로, 남으로부터는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그는 이런 복잡한 사상적 경로를 일본어에 담아 1950년 무렵부터 시를 써왔다.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과 함께 재일교포 문단 1세대를 대표한다. 특히 그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일본어로 시를 쓴다 해서 일본 시단에 '김시종어(語)'라는 말까지 정착돼 있다. 한국에서는 '차별받는 재일동포들을 위한 저항시'라는 평을 듣기도 하나 일본에서는 사상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NHK가 그의 삶과 문학을 다룬 '진혼의 여정'을, 아사히(朝日)신문이 그의 삶을 2개면 특집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1986년에는 '재일(在日)의 틈새에서'로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주는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