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흑 ?計勝

〈제14보〉(174~191)=8강전서 탈락의 아픔을 맛봤던 3명의 한국 기사가 그날 밤 이창호의 방에 모여 공동 복기(復棋)를 했다.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탄식하는 동병상련의 자리였다. 복기가 끝나고 헤어질 때 내려진 결론은 이랬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창호는 말도 안 되는 대착각으로, 최철한은 무리한 공격으로 바둑을 망쳤으니 억울할 것도 없다. 그러나 숱한 기회를 맞이하고도 번번이 비켜간 안조영 판은 너무도 아까웠다."

175부터 179까지는 흑의 기분 좋은 선수(先手) 권리. 188은 후수 1집 끝내기처럼 보이지만 생략할 수 없는 곳이었다. 참고도 1이 자체적으론 가장 큰데, 흑2로 끊길 경우 문제가 발생하는 것. 5까지 흑이 선수로 차단한 후 8에 붙이면 좌상귀 백이 몽땅 잡힌다. 그렇다고 백3으로 4에 두는 것은 흑3에 이어가 중앙에서 큰 수가 난다.

189 젖힘이 마지막 큰 곳. 힘없는 손길로 190에 붙여 본 안조영, 191을 한동안 응시하더니 계시원의 초읽기를 제지한다.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말이 없었다. 프로 바둑 종국(終局) 직후의 현장만큼 어색하고 미묘한 자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천국에 오른 자와 지옥으로 떨어진 자 둘이 서로 시선을 피한 채 손으로 몇 마디 나누더니 서둘러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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