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돌며 6000여 명 영정 사진 찍어준 조무연씨 "누군가의 '마지막' 도우려 카메라 배웠지"

"영정(影幀) 사진이라고 하지 말아요. 오래 건강하게 사시라고 찍어 드리는 건데 장수(長壽) 사진이라고 해야지."

전국 시골을 찾아다니며 생활이 어려운 노인·장애인·중환자의 영정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고 있는 조무연(69)씨의 말이다. 그는 이들의 '장수 사진'을 찍은 뒤 10×8인치 액자에 넣어 택배로 보내준다. 2006년 가을부터 최근까지 만 4년간 65개 마을에서 총 6325명이 그의 앞에 앉았다.

조씨는 전문 사진가가 아니다. 10년 전까지 스티커 인쇄업체를 운영했다. 시간과 돈에 여유 있는 '부유한 은퇴자'의 삶을 살 법도 했다. 그러나 환갑에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봉사의 삶을 시작했다. 조씨는 "평생 건강하게 살았으니 내 몸을 써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 대전의 요양병원으로 실습 가서 전신마비 83세 환자를 목욕시켰어요. 그 할아버지 제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말을 붙여도 고개를 돌려요. 슬그머니 웃음도 났지만 마음이 평온해지더군요. 젊을 때 정신없이 일하고 회사를 키우던 때와는 또 다른 충만함이었어요."

5년 넘게 매주 한두 차례 병자들을 찾아가던 조씨를 가족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조씨는 그 무렵 TV에서 영정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사진사 이야기를 보고 "그럼 저걸 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누군가의 '마지막'을 도와주는 일이지만 웃으며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가족도 찬성했다. 조씨는 동네 사진관에서 사진사에게 '점심을 사줘 가며' 촬영·조명을 배웠고, 인물사진 찍는 법을 책을 보며 연구했다. 그의 아들이 촬영장비를 사주었고, 아내는 연습 모델이 돼주었다. 동대문시장에서 여자 한복 저고리와 남자 재킷·와이셔츠·넥타이도 10벌씩 샀다.

첫 '출장 촬영지'는 고향인 충남 부여 남산골. 종일 39명의 얼굴을 찍었다. 이후 경북 안동, 경남 사천, 전남 영광, 경기 양평, 충남 태안 등 지인의 연고지나 평소 가보려던 마을을 찾았다. 그의 촬영 기록을 보니 주로 봄·가을에 작업했다. 사흘 연속 나간 적도 있고, 하루 400명 넘게 찍은 날도 있다.

조씨는 면사무소 등에 미리 연락해 뜻을 알리고, 신청을 받아 관공서 강당 등에 촬영장을 확보해달라고 부탁한다. 어떤 곳에선 "약 팔러 오는 것 아니냐"며 거절했고, 어떤 동네에선 사진관들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무원과 주민은 작업을 도와주었다. 촬영 당일은 새벽 3~5시에 승합차에 장비를 싣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종일 셔터를 누르면 손가락이 마비되고 눈은 벌겋게 충혈된다고 한다.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에 '영정 사진 찍으러 가자'는 말은 차마 못 하죠. 사람 떠난 뒤에 증명사진을 확대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사진 좀 미리 준비할걸'하고 후회들 합니다. 촬영 봉사를 가면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업고, 아버지가 장애인 아들을 데리고 와요. 찍는 사람도 숙연해지죠. 난 사람들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주면서, 어쩌면 나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