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진작가로 유명해지면 실종된 아버지도 찾기 쉽겠죠"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사무실. 산악사진가 조준(32)씨가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작업하고 있다. 컴퓨터에는 2008년 여름 지리산 장터목에서 찍은 일몰, 지난해 초 덕유산 상선대에서 찍은 상고대(나무서리) 등 50만여 장의 산(山)사진이 있다. 전시회에 내놓을 사진을 고르고 보정작업을 하는 중이다.<사진>

조씨는 지난가을 서울 정독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50만 장 가운데 37장을 엄선해 내놓았는데 관람객이 3000명 넘게 몰렸다. 그의 흥행은 80년대 이후 쇠락해온 풍경사진계에 산뜻한 충격을 줬다. 그는 "우리나라 산은 꽃, 능선, 구름을 한 컷에 담을 수 있어 영상미가 남다르다"며 "게다가 세월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황홀함도 있다"고 했다.

전북 익산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조씨 가정은 부유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사기당한 뒤로 기울었다. 번듯한 단독주택에 살다가 단칸방으로 내쫓겼다. 아버지가 돈을 되찾으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동안 어머니가 도배일로 삼 형제를 키웠다. 이리고에서 전교 수위권이던 그는 2학년 때 자퇴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전북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했다.

이후 막노동, 주유소, 전단배포, 복조리판매, 신문·우유배달, 열쇠수리, 도배, 버스운전, 학습지 교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이렇게 번 돈으로 2002년 익산에 작은 사진관을 차렸다. 그는 "대학졸업 앨범과 가족사진을 찍어주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2008년 사진관 문을 닫았다. 당뇨와 치매를 앓다가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전국의 보호시설을 가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전국의 산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는 "길을 잃은 아버지가 혹시 산 어딘가에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녔는데, 그때그때 눈에 들어온 멋진 장면을 찍다 보니 어느새 산악사진가가 돼 있었다"고 했다.

정식 사진교육 한 번 없이 그는 작년 2월 한 주류업체가 주최한 킵워킹펀드 공모전에서 우승했다. 역경을 딛고 꿈을 이루려 노력한 사람 다섯명을 선발해 2년간 1인당 1억원씩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조씨는 "꼭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며 "내가 유명해지면 어딘가 살아계실 아버지를 찾기도 한결 빠르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