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1.24 23:21 | 수정 : 2011.01.25 09:02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최근 끝난 TV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왔던 소방관의 기도문이다. 폐쇄공포증에 걸린 남자주인공이 엘리베이터에 갇혀 괴로워할 때 그를 구하고 순직한 소방관의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왔다. 미국 앨빈 윌리엄 린(Linn)이라는 소방관이 1950년대 말 불길에 갇힌 어린이 세 명을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썼다고 한다.

▶소방관의 주 임무는 화재 진압이지만 최근에는 만능 해결사로 변하고 있다. "처마 밑에 생긴 벌집을 떼어 달라", "잠긴 문 좀 따줄 수 없느냐", "집 나간 애 좀 찾아달라"…. 심지어 숨 넘어갈 듯 전화를 걸고는 정작 119대원이 출동하면 "택시가 안 잡히니 집에 데려다 달라"는 취객들도 있다. 한파 때문에 수돗물이 끊기자 급수 지원 요청까지 쏟아져 소방관들이 파김치가 되고 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소방관 평균 수명은 58.8세다. 한국인 남성 평균인 77세보다 18년 이상 짧다. 화재 현장에서 유독가스를 들이마시는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30㎏이 넘는 장비를 다루느라 고질적인 허리디스크에 시달리고,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 겪는 스트레스도 심각하다. 영남대 의대가 대구지역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21.5%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주말 광주광역시 고층 아파트 외벽의 위험한 고드름을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하지만 고가사다리차 승강기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승강기가 36m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소방관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문제의 고가사다리차는 사용연한 15년을 3년 이상 넘긴 노후 장비였다. 전국 고가사다리차 195대 가운데 11%인 22대가 사용연한을 초과한 차량이라고 한다.

▶2004년 소방방재청이 출범한 이후 5년 동안 31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다친 소방관도 1560명이나 된다. 부상이 아무리 심해도 국가가 치료비를 대주는 기간은 일반 공무원과 같은 3년뿐이다. 낡아빠진 장비에 목숨을 거는 소방관들에게 한 달 생명수당 5만원만 주면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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