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상태 미국인 장기 기증...외국인 기증 첫 사례

한국에 살다가 뇌사상태에 처한 미국인 여성이 자신의 각막·간·신장 등 장기를 한국인 환자들에게 기증하고 생을 마쳤다. 국내에서 뇌사 상태의 서양인이 장기를 기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5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장기 기증의 주인공은 경기도 의정부 국제크리스천외국인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미국인 린다 프릴(Freel·52)씨. 그는 지난 20일 수업 중에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져 의정부성모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진단을 받았다.

하루 뒤인 21일 프릴씨가 일하던 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그의 남편 렉스 프릴씨는 고인의 평소 뜻에 따라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프릴씨 부부는 14년 전 한국에 와 국제크리스천외국인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 교육 및 선교 사업을 해왔다.

린다 프릴씨는 이날 곧바로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날 오전 12시부터 22일 새벽 4시까지 장기적출과 이식이 시행됐다. 고인은 간, 양쪽 신장과 각막, 골조직, 피부 등의 인체조직을 기증하고 22일 오전 2시1분에 영면했다.

기증된 고인의 장기는 적출 즉시 만성신장질환을 앓는 2명에게 신장이, 간질환을 앓는 환자 1명에게 간이 각각 이식됐다. 이어 각막은 24일 2명의 환자에게 이식됐으며, 기증된 조직은 향후 화상 등의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이식될 예정이다.

 

이번 장기기증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환자들은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이며 건강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뇌사자 장기기증의 경우 장기기증 동의과정에서 의사결정이 늦어져 간혹 기증이 어려운 사례가 발생하는데 프릴씨의 경우는 결정이 빨라 시의적절했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의료진은 서양인의 장기를 한국인에게 이식할 수 있는 것은 장기이식 시 인종적 차이가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인종 간에도 이식에 적합한 유사성이 맞을 경우 충분히 이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 양철우 교수는 “미국의 경우 100만명당 35명의 장기기증이 이뤄지지만 우리나라는 100만명당 5명에 불과해 장기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린다 프릴씨의 장기기증이 국적을 뛰어넘은 생명나눔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故) 린다 프릴씨의 빈소는 의정부성모병원 영안실(8호)에 마련됐으며, 조문은 25일 오전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