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화 망하면 은퇴" 자신 있게 배수진!

미학적 수사나 정치적 답변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늘 그렇듯 직구 정면 승부. 이준익(52) 감독은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생산자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게 당연하다. (이번 영화가) 망하면 상업영화 감독 은퇴하겠다." 역설적으로는 자신감, 한편으로는 흥행 스코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충무로 시스템에 대한 반발로 읽히는 이 답변은 '평양성'(27일 개봉)에 대처하는 그의 비장한 심경을 요약한다. 25일 서울 삼청동에서 그를 만났다.

―8년 전 '황산벌'(2003)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자칫 '동어반복'이란 부담이 있었을 텐데.

"첫째, 처음 기획부터 신라 통일 사극 3부작으로 구상됐다. 백제의 몰락이 '황산벌'이었다면 '평양성'은 고구려의 멸망 그리고 3부는 당나라를 밀어내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는 내소성전투다. 둘째, 왜 지금인가. 전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의 아쉬움이 있었다. 엔딩을 절망으로 그려내면서 상업영화로서 관객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전쟁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평양성'은 '황산벌'과 달리 지역 감정이라는 민감한 뇌관보다 대(對)당나라 민족주의에 의존한다. 안이한 흥행전략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애초 목표는 절대 아니었다. 우리는 고구려에 연민과 동경이 있지만 놀랍게도 영화 속에 한 번도 담아 본 적이 없다. 감독으로서 당연히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사극을 담아내는 감독의 첫째 목표는 현재성의 반영이다. '황산벌' 당시 전라도와 경상도의 동서 지역 감정을 그렸다면 '평양성'에서는 남북한의 대립조건에서 현재성이 있다고 봤다."

―수십억원을 들인 상업영화 틀 안에서 그런 욕망은 극히 비상업적인 선택 아닐까.

"자기 나라의 역사를 멸시하거나 망각한 민족은 반드시 망했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중국 동북지역 역사를 모두 자국화하려는 중국의 프로젝트)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회성 뉴스로 소비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교과서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영화가 담론화하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감독의 위험한 선택이지만 그런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게 중견감독의 소명 중 하나 아닐까."

―전작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과 '님은 먼 곳에'의 흥행 실패가 당신에게 준 교훈은.

"메시지를 전하려는 내 목소리 톤이 너무 높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번에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톤을 바꿨다(웃음). 이번 영화는 한 명의 영웅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서사가 아니라 배역 하나하나가 모두 주인공인 영화다. 마케팅 차원의 발언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이번 영화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


☞ 영화 '평양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