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뇌사 아들 장기기증 결정한 母情

"아들아, 엄마 잘한 것 맞지? 잘했다고 말해줘."

검은 상복을 입은 어머니는 영정 속 아들 얼굴을 연방 쓰다듬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0호실에 차려진 이종훈(33)씨 빈소 안엔 어머니 장모(67)씨의 흐느낌만 가득했다.

어머니에게 하나뿐인 아들 이씨는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존재였다. 키 180㎝의 건장한 이씨는 광운대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사회생활도 열심히 했다. 그런 이씨가 지난 15일 갑자기 쓰러졌다. IT업체를 그만두고 창업을 준비하면서 새벽까지 과로한 탓인지 뇌출혈이 그를 덮쳤다.

'얘가 이제 나를 떠나는구나.' 장씨는 병원 응급실에서 아들을 본 순간 죽음을 예감하고는 가슴을 쥐어뜯었다.

병원에선 뇌수술해도 깨어나지 못하거나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장씨는 순간 13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아직도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이 떠올랐다. 장씨는 아들에게 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수술을 포기하고 하루가 지나자 의료진은 '뇌사(腦死)' 판정을 내렸다. 절망적인 진단이 떨어졌지만 어머니는 강했다. "선생님, 그러면 혹시 장기 이식은 할 수 있나요?"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 세상에서 살게 할 길이 달리 떠오르지 않았어요. '장기 하나라도 펄떡거리며 살아준다면' 그 생각이 먼저 들었지요."

입원했던 병원을 떠나 장기이식센터가 있는 서울성모병원까지 이동하는 40여분간 장씨는 번민했다. "장기를 기증하면 아들이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힘들어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아들의 모든 장기와 조직을 내놓기로 결정했다.

17일 아침 7시 최종 뇌사 판정이 내려졌고, 그날로 장기와 조직을 떼는 수술에 들어갔다. 아들이 마지막 수술을 받는 동안 어머니는 관(棺)에 넣을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내 아들 종훈아. 이제 다시는 너를 만져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보내며 이 글을 쓴다…. 엄마가 (장기 기증) 잘 결정한 거지? 너와 함께 이 하늘 아래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결정한 거야. 너도 찬성할 것이라고 믿어. 장하다, 내 아들. 너를 보내며 울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파. 안녕, 우리 아들.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

이씨의 신장은 당일로 이식이 이뤄졌다. 만성신부전증으로 각각 8년, 10년간 신장 이식을 기다려온 30대 남성과 50대 남성이 신장을 하나씩 받았다. 양쪽 각막은 70대 여성과 40대 여성에게 하나씩 이식됐다. 서울성모병원 김해정 장기이식운영팀장은 이식 환자들 근황에 대해 "젊고 건강한 장기를 받았기 때문에 수술 결과가 좋아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뼈·피부·심장판막 같은 조직도 기증해서 앞으로 피부 이식이 필요한 화상 환자나 뼈 이식을 해야 하는 골수암 환자 등 수십명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장씨는 수혜자들이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랐다. "어느 분이든 그저 행복하게 살아줬으면 합니다. 한 번만이라도 생생한 그 모습을, 제 아들 보듯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