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여전히 불안… 그래도 설 위해 시장 갈 겁니다"

28일 오전 10시 30분쯤 강원 홍천군 북방면 원소리 입구 2차선 도로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9일간 출입을 막았던 탓에 눈길 위에 발자국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곳은 이날 아침에야 도로통제가 풀렸다. 강원 홍천우체국 집배원 이동형(48)씨가 우편배달 오토바이를 몰고 원소리 마을 입구로 달려갔다. 모처럼 외부인을 본 마을 개들이 짖어댔다.

"이게 누구야. 아저씨, 오랜만에 보니 진짜 반갑네." 이씨가 마을 어귀 한 우사(牛舍) 옆에 오토바이를 세우자 소 여물 쑤는 가마솥 곁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마을 사람 6~7명이 반겼다. 배달 가방에서 우편물 10여통을 꺼내 든 이씨가 하나씩 주인을 찾아 건네며 말했다. "그동안 (우편물을) 직접 챙겨 가시느라 불편하셨죠? 집까지 갖다 드리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원소리는 지난 19일 동쪽마을 역전평리에 구제역이 발생해 살처분을 하면서부터 출입이 통제됐다. 마을을 잇는 도로 통행이 끊긴 것이다. 원소리를 지나야 갈 수 있는 서쪽마을 구만리도 덩달아 통행이 금지됐다.

역전평리를 지나 원소리·구만리를 오가던 집배원 이씨도 출입통제를 당했다. 이씨는 "늘 구제역 발생 지역을 통과하는 저를 마을 사람들이 들여놓겠어요?"라고 했다.

그렇다고 원소리·구만리를 합해 하루 200통에 이르는 우편물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매일 아침 10시 30분쯤 집배원 이씨가 마을 입구에 도착해 전화를 걸면 이장이 나와서 우편물 보따리를 받아갔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다행히 구제역은 원소리를 비켜갔다. 위기를 넘긴 마을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설 분위기도 되찾았다. 매일 이창수(56)씨네 우사에 모여 물을 데우고 소독약을 녹여 방역에 앞장서던 주민들은 이날 모처럼 명절 얘기에 들떴다. 반종배(69)씨는 집배원 이씨에게 "오후에 두부를 만들 건데, 미리 연락을 하고 들어오지 그랬어. 나눠 먹게"라며 "소 안 키우는 사람도 꿈쩍 못하고 마음 졸였는데 이제 좀 나아지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허명자(62)씨는 가마솥에 끓인 물로 소독약을 녹이며 집배원 이씨를 맞았다. "그동안 명절 준비는커녕 반찬 하나 못 사다 놓았어요. 설 쇠려면 홍천에 가서 장도 봐야 하고 할 일이 많지요." 커다란 들통 가득 물을 붓고 콩을 불리던 반임순(54)씨는 "두부 만들고 떡도 하려고요. 차례는 지내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지에 나간 자녀를 불러들여도 좋은지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했다. 소 100여 마리를 기르는 박수열(55)씨는 "서울·춘천에 사는 3남매와 동생들을 모두 못 오게 했다"고 했다. "백신은 다 접종했지만 정말 괜찮은지 봄까지 두고 봐야 해요." 집배원 이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요 아래 역전평리 밭치리 마을은 아직도 제가 못 들어가요. 마을 앞 우편물 수취함에 편지만 두고 오는 형편이니 아직 조심하시는 게 낫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