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마음의 상처까지 합주 선율에 날려보내요"

'꿈을 그리는 오케스트라'는 작년 6월부터 파트별로 6명씩 1주일에 두 번 모여 악기 연습을 해왔다. 김씨는 작년 보건복지부와 서울시·동작구로부터 예산 1억800만원을 지원받아 월평균 소득 이하 가구의 만 7~15세 청소년 76명에게 바이올린·첼로·플루트 등 악기를 대여해준 뒤 17명의 오케스트라 단원 선생님들로부터 배우도록 했다. 아이들 중 실력이 뛰어난 20~30명과는 지역 복지관 등에 연주 봉사활동도 다녔다. 이날은 연주 봉사를 함께 다니던 주요 멤버 13명이 모여 29일 숭실대 한경직 기념관에서 열리는 첫 공연 '꿈을 그리는 연주회'를 앞두고 마지막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음악만 가르친 게 아니라 한명 한명 상담해 마음의 상처와 가정불화 등을 치유해왔다. 자신 역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음악으로 이겨냈기 때문이라 했다.

"지병이 있던 부모님이 제 중학교 1학년 때 한 달 간격으로 모두 돌아가셨어요. 전북 김제의 시골집에서 혼자 지내며 끼니도 잘 챙기지 못하는 제게 희망을 준 건 '음악'이었어요. 학교 음악 선생님이 레슨비도 받지 않고 피아노를 가르쳐 주셨어요. 죄송해하던 제게 선생님은 '나중에 네가 꼭 성공해 너와 비슷한 아이들에게 베푸는 게 나한테 갚는 길'이라 하셨어요."

이날 내내 밝게 웃고 친구들을 리드하던 조예나양이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한 경우다. 11세이지만 유치원생으로 보일 만큼 왜소한 조양은 작은 키와 '똑똑한 언니' 때문에 늘 움츠러들던 아이였다. 연습실에 오면 구석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눈치만 살폈고 말도 잘 안 했다.

"선생님, 언니를 이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언니를 죽이고 싶어요"라며 울던 애였다. 조양에게서 음악적 소질을 발견한 김씨는 안타까웠다고 했다. "한번 배운 곡은 그대로 기억해내고 '절대음감'을 갖고 있더라고요. 자신감과 용기를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김씨는 첼로를 잘 켜는 조양을 일부러 친구들 앞에서 더 칭찬해줬고,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 엄마처럼 챙겼다. 4개월쯤 뒤 조양은 "선생님, 저도 언니보다 잘하는 게 있을 줄 몰랐어요"라고 했다. 지금은 매일 싸우던 언니와도 친하게 지내고, 봉사활동 다닐 때는 당당하게 관중을 바라보며 연주하는 쇼맨십도 발휘한다.

제일 뒷줄에 앉아 조용히 플루트 연습을 하던 윤현진(가명·12)군은 7개월 전엔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잠시도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해 처음 왔을 땐 아이들로부터 "쟤 때문에 오기 싫다"는 소리를 들으며 따돌림당했다. 하지만 김씨와 선생님들은 윤군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계속 얘기를 들어줬다. 조용한 대화만으로도 요구 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배운 윤군은 서서히 수업에 집중했다. 지금은 수업 15분 전 제일 먼저 도착해 의자와 보면대(악기 받침대)를 정리하는 모범생으로 변했다. 윤군은 "제가 공연까지 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며 웃었다.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배우는 조부모 가정의 김윤지(가명·13)·선지(가명·12) 자매는 "내일 할아버지·할머니가 꼭 오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자매는 작년 8월 따로 살던 아버지가 자살한 뒤 이 오케스트라도 그만둬야 할 뻔했다. 아들 자살 소식에 충격받은 할아버지가 "손녀들을 고아원에 보내야겠으니 오케스트라도 그만두라"고 했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김씨가 나서 "고아원에 보내지 말라"며 잘 모르는 조부모를 대신해 직접 동사무소를 찾아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혜택을 받게 해줬고, 아이들 후원자도 찾아줬다. 세대 차 탓에 자주 불화를 겪던 아이들과 할아버지 사이를 오가며 중재자도 돼 줬다.

김씨는 연습이 끝나자 "내일 낮 12시 반까지 숭실대 기념관에서 만나자"고 한 뒤 아이들을 차례로 안아줬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아이들이 참 많이 자랐어요. 음악회 제목처럼 우리 아이들이 모두 자신감을 갖고 꿈을 심을 수 있는 음악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김씨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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