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민의 평점 따윈 필요없어] 영화 '걸리버 여행기'… 잭 블랙이 펼치는 잔재미 쏠쏠… 문득 원작이 읽고 싶어지네

'잭 블랙의, 잭 블랙에 의한, 잭 블랙을 위한' 영화다. 잭 블랙은 본연의 '뻔뻔한 집념과 소신의 루저' 캐릭터에 걸리버란 이름을 빌린다.

스타워스 피겨 인형을 친구 삼는 전형적 루저의 몽타주를 한 걸리버는 뉴욕 신문사의 우편부 말단직원이다. 여행전문기자인 달시를 오랫동안 짝사랑하나 데이트 신청 한번 못해 본 그는 그녀에게 잘 보이려 어느 날 큰맘 먹고 버뮤다 삼각지대 취재를 지원한다. 그리고 세계 7대 불가사의인 그곳에서 폭풍우와 함께 사라진다. 표류하던 걸리버가 눈을 뜬 곳은 소인국 '릴리풋'. 이제부터 뚱뚱한 발레리노를 연상케 하는 잭 블랙의 육중하면서 날렵한 슬랩스틱이 펼쳐진다.

왕궁에 난 화재를 소변으로 진압하고 적국 '블레푸스쿠'의 전함을 온몸으로 막아낸 공로로 영웅이 된 그는 점차 릴리풋을 걸리버 랜드로 만든다. 자신을 백악관에 사는 수퍼짱 대통령이라 속이고 타임스퀘어와 똑같은 거리를 만들어 모든 광고판을 자신의 얼굴로 도배하는 걸리버. '아바타'는 '가바타'가 되고 '스타워스'와 '타이타닉'이 교묘히 섞인 이야기는 걸리버 인생을 담은 자전적 연극으로 탈바꿈해 릴리풋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긴다. 하루아침에 소심한 루저에서 왕국의 아이콘으로 신분 상승한 걸리버. 이후의 이야기는 짐작대로다. 그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세력에 의해 정체를 들킨 후 다시 루저로 돌아가나 대오각성 끝에 인생역전을 이룬다는 훈훈한 이야기.

작은 나라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잭 블랙의 '걸리버 여행기'는 컴퓨터그래픽에 기댄 잔재미는 쏠쏠하나 심심한 감이 없지 않다. 사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결코 심심할 틈이 없는 작품이다. 어렸을 적 우리가 읽은 동화는 불온한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삭제되고 각색된 걸리버 여행기의 아동 버전이다. 진짜 원작이 품은 독설적인 어조로 영화를 찍는다면 '반지의 제왕'보다 더 장대한 사회 정치 풍자 판타지가 되어야 한다.

인류혐오자로 유명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비꼰 '걸리버 여행기'는 300년 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위트 있다. 두 소인국 '릴리풋'과 '블레푸스쿠'가 전쟁을 벌인 이유가 계란을 먹기 전 넓고 둥근 방향의 끝부분으로 깨는가 좁은 방향의 끝부분으로 깨는가 하는 논쟁 때문이었다니. 작건 크건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인 인간종족에 관한 보고서 '걸리버 여행기'. 혹 극장에서 '초딩'들과 함께 웃다 머쓱해진 어른이라면 오랜만에 읽어봐도 재미날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 감독 롭 레터맨. 출연 잭 블랙, 에밀리 블런트. 1월 27일 개봉.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