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설날][설 극장가] '3D'로 돌아온 걸리버와 가필드 로맨스에 빠진 액션·첩보 영화

올해 설 시즌 극장가에서 눈에 뜨이는 외화들엔 하나같이 '3D'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먼저 '걸리버 여행기 3D'는 그 콘셉트만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영화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그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입체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게다가 주인공이 잭 블랙이라니! 이 두 가지가 '걸리버 여행기 3D'가 주는 쾌감의 전부다. 그 이상을 원했던 관객이라면 조금 실망할지도. 잭 블랙의 원맨쇼는 여전히 의욕 넘치지만, 헐겁게 각색된 이야기는 관객을 집중시키는 데는 역부족이다.

1960년대 TV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그린 호넷 3D'는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등 놀라운 시각적 상상력으로 유명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액션 영화다. '루저 코미디'의 달인 세스 로건과 대만 배우 주걸륜이 주연. 평범한 사람이 우연한 기회로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점이 이색적이고, 공드리 감독 특유의 볼거리도 있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재미의 초점을 맞춘다면 다소 심심한 구석도 있다. '가필드 펫포스 3D'는 '귀차니즘'의 대명사인 고양이 가필드가 악당을 물리치고 우주를 구한다는 이야기. 전형적인 아동용 설 영화다.

입체 안경을 걷어내면 먼저 '상하이'가 눈에 들어온다. 진주만 공격 직전, 상하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역사 드라마와 첩보물, 로맨스의 결합이다. 존 쿠잭, 주윤발, 공리, 와타나베 켄 등 굵직한 캐스팅 라인이 관객을 유혹하는 가장 큰 요소. 1940년대 상하이를 꼼꼼히 재현한 부분도 높이 살 만한데, 아쉬운 건 여러 장르가 뒤섞이면서 중심을 잃는다는 점. 관객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홍콩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가 6년 만에 뒤늦게 개봉된다. 단순한 범죄 영화를 넘어 권력과 사회의 메커니즘을 담아내는 두기봉 감독의 대표작으로, 홍콩 영화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액션 대신 차갑고 냉정한 카메라가 관객과 대면한다. 벤 애플렉이 주연과 감독을 맡은 '타운'은 은행 강도가 인질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로맨스에 빠진 범죄자가 새로운 삶을 꿈꾸며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 벌인다는 설정은 꽤나 익숙하다.

우디 앨런의 40번째 극장용 장편영화 '환상의 그대'는 대가가 들려주는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다. 내공이 깊을수록 그 화법은 쉽고 자연스러운 법. 얼핏 보면 '막장 드라마'에 가까울 정도로 통속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따금씩 툭툭 던져지는 삶의 경구들은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신경안정제보다 환상이 삶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이 영화의 교훈이라면 교훈. 앤서니 홉킨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나오미 왓츠 등 명배우들이 빚어내는 묘한 뉘앙스의 연기를 보는 맛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