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사법연수원생 박연재씨 "재판받기 어려운 이웃 위해 일하고 싶어"

"연수원 동기 중에는 친구 아들도 있고, 아들 친구도 있어요. 허허."

서울 법원 청사에서 실무수습(시보)을 받고 있는 사법연수생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1951년생으로, 올해 환갑인 박연재씨다. 우여곡절 끝에 사법연수원 41기로 늦깎이 입소했다.

박씨는 30년 전인 1981년과 그 이듬해 모두 사법시험에 2차까지 합격했다. 하지만 면접에서 계속 탈락했다. 전남대 법대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은 전력이 문제가 됐다. 법조인의 꿈을 뒤로 한 박씨는 KBS에 입사해 언론인이 됐다. 그런데 뒤늦게 젊은 시절의 꿈을 펼 기회가 찾아왔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박씨와 유사한 이유로 법조계 입문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연수원 입소를 권고했고, 법무부도 받아들인 것이다.

박씨는 평생 일해온 KBS를 광주방송총국 심의위원으로 정년 퇴임했다. 그리고 지난해 가족과 친구들의 축복과 격려 속에 연수원 생활을 시작했다.

"원래는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동기 자치회장을 하잖아요. 근데 난 그냥 알아서 고문으로 물러났어요. 회장 하기에도 나이가 너무 많잖아? 그런데 동기들이 얼마나 독한지 몰라. 수업에 지각한 친구를 지금까지 딱 두 번밖에 못 봤어요. 결석은 아예 없고…."

박씨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서울고법 민사10부로 아침 9시까지 출근해 사건기록을 보며 판결문을 써보고 요점을 정리하기도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혼자서 민사·형사·행정 등 다양한 법정을 찾아가 재판 과정을 기록하며 자습한다.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못 따라가요. 내가 사법시험에 붙었을 때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데, 그 뒤 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으니 법은 또 얼마나 많이 달라졌겠어?"

박씨는 딸(부산지검 박상희 검사)과 사위(김준형 변호사)가 '선배 법조인'이다. 연수원 2년 생활의 반환점을 돈 박씨는 "이 나이에 뭘 더 할 수 있겠나. 무사히 수료만 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향후 생활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재판이라는 게 선악(善惡)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다투는 거잖아요. 그런데 재판에 졌다고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는 풍토가 아쉬워요. 승소한 사람도 패소한 사람도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정착시키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제대로 된 재판을 받기 어려운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고요. 어쩌면 딸이나 사위와 법정에서 맞닥뜨릴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