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44년前 헤어진 어머니… 설에 뵙게 될 줄이야"

"어머니, 저 알아보시겠어요?"

지난 31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무릎을 꿇은 허주병(64)씨가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노모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머니 김석금(90)씨는 아들 얼굴을 어루만지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씨는 아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굵은 눈물만 쏟았다. 44년 만에 상봉한 모자는 그렇게 10여분 동안 눈물만 흘렸다.

김씨는 허씨가 한살 되던 1948년 집을 나갔다. 젖먹이였던 허씨는 새어머니가 길렀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주변 어른들로부터 "친어머니는 집을 나갔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때부터 "친어머니를 찾겠다"며 틈만 나면 가출했다고 한다.

허씨는 "자식이 없던 아버지가 나를 낳기 위해 어머니와 살다가 헤어진 사실을 알고는 더더욱 어머니를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허씨는 "네 어미를 찾아가면 다시는 안 본다"던 아버지와 싸운 끝에 스무살이 되던 1967년, 전남 보성군 벌교에 살던 어머니 집 주소를 알아냈다. "초가집에서라도 어머니와 같이 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생각했지요. 그때는 어머니를 만나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허씨의 소망은 어머니 김씨와 재회하는 순간 산산이 깨져버렸다. 어머니는 이미 재혼한 상태였고 슬하에 자식도 여럿 있었다. 실망한 허씨는 하염없이 우는 김씨를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허씨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워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고 했다.

희망이 사라진 허씨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수년간 일용노동으로 모은 돈으로 건설 하청 사업에 도전했지만 1997년 IMF 금융위기 시기를 포함해 네번이나 사업에 실패했다. 다행히 2005년 기원(棋院)을 열어 재기에 성공했고 그해 결혼도 했다. 허씨는 지난해 "죽기 전에 어머니를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헤어진 가족을 잘 찾아주기로 소문난 경기도 남양주경찰서 이건수 경위(43)를 찾아갔다. 허씨는 어머니 이름도 몰랐고, 어머니를 처음 만날 때 들었던 이복동생(54)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 5일 전이었던 지난 1월 28일 이 경위가 "어머니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어머니를 이렇게 설을 앞두고 뵙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허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 김씨는 44년 전 아들 허씨와 만난 뒤 전 남편이 사는 전라북도 정읍에 찾아갔다가 "당신 아들은 죽었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김씨는 아들을 위해 손수 흰죽을 끓였다. 난생처음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은 허씨는 소리없이 울며 흰죽을 남김없이 먹었다. "어머니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나니 여한이 없습니다. 조만간 가족들과 함께 찾아와 인사드려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