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환경외교에 미친 그가 외친다 "환경은 돈입니다, 돈 돈"

"난 BMW(bus＋metro＋walking)족"이라고 자랑하는 정래권(55)씨는 대한민국 환경외교의 산증인이다. 오존층 파괴물질을 규제하는 국제협약 '몬트리올의정서'(1989)부터 사상 최대 규모의 리우환경회의(1992), '탄소배출권'이 쟁점이었던 교토의정서(1997)를 거쳐,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2009)까지 환경이 국가 간 최대 이슈로 부상할 때마다 국제회의를 누볐다. 한국 외교관으로는 처음 '기후변화대사'라는 직함을 달았다. 대사 임기를 마친 2010년 5월에는 외교부에 전격 사직서를 내고 유엔으로 갔다. 해외공관장으로 일할 수순을 마다한 것이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 현재 그의 직함은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ESCAP) 환경지속가능국장. "환경은 돈"이라고 단언하는 그는 "개도국들이 선진국 환경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임무"라고 말했다. 최근엔 녹색예산유럽이 매년 개최하는 세계환경세제회의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크라이저 환경세제'상을 수상했다. '녹색성장(Green Growth)'이란 말을 만들어낸 영국 학자 폴 이킨스는 그를 '위대한 기후 사상가(Great Climate Thinker)'라고 칭한다.

◆환경, 남북문제보다 중요하다

―환경세제로 상 받는다기에 '퐁퐁' 만드는 분인 줄 알았다.

"그렇게들 오해 많이 하신다.(웃음) 그린 택스(green tax)가 우리에겐 그만큼 낯설다."

―환경세제(稅制)가 뭔가.

"녹색에 가치를 많이 부여하는 쪽으로 세금제도를 개혁하는 거다. 탄소세처럼."

―세금 더 내라 하면 욕먹을 텐데.

"소득세제 줄이고 녹색세제 올리면 총량은 같아진다. 이번 전력대란이 보여줬듯 물값, 전기료, 가솔린값에 대한 가격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솔직히 '녹색성장'이란 말,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환경과 경제성장, 대치되는 개념 아닌가.

"지금까지는 환경이 부담으로 작동했지만, 이제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기술과 그에 대한 투자가 경제 성장을 이끌게 될 거다. 불행히도 우리의 관심은 남북문제, 국내 정치문제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

―남북문제가 환경보다 중요하지 않나.

"당장 석유값이 배럴당 150달러, 200달러가 되면 한국 경제는 엄청난 석유수입 대금으로 경상수지가 영원히 적자된다. 석유값 뛸 때마다 환율 폭등하고, 실질소득도 줄어들고. 현재의 외교는 땅, 시장이 아닌 생태공간을 둘러싼 싸움이다. 물·공기 같은 생명자원은 더이상 무제한이 아니다.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체질을 바꿔야 살아남는다."

◆지금 세계는 환경전쟁 중

―환경외교의 중심에 있었다. 1989년 '몬트리올 의정서' 얘기부터 들려달라.

"몬트리올 의정서는 오존층 파괴 주범인 프레온 가스의 사용량을 규제했다. 개도국은 국민 1인당 1년에 0.3㎏을 쓸 수 있고, 전환경제국가(Economies In Transition)로 분류된 동구권 국가들은 0.5㎏까지 쓸 수 있다는 내용이다. 어기면 무역제재를 받는다. 우리는 당연히 개도국으로 분류돼 1년에 1만2000t만 써야 할 상황인데, 이미 1만6000t을 넘어서고 있었다. 프레온 가스는 반도체를 세척하는 주 원료다. 우리 성장동력인 반도체 산업에 최대 위기가 닥친 거다. 국가적 타격을 막으려면 한국을 EIT 범주에 넣어야 했다.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때 절감했다. 환경 없는 경제 성장은 끝났다는 걸."

―리우환경회의에서는 '특허의 강제실시'라는 조항을 '어젠다 21'에 포함시켜 선진국을 놀라게 했다.

"민간기업이 지구환경 관련 기술의 소유권을 남용할 땐 몰수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지구 환경은 선진국들이 죄다 파괴해놓고 이를 복구할 환경기술은 개도국에 전수하지 않겠다고 버티더라. 민간기업이 기술을 소유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래서 오존층이 어떻게 독점이윤추구의 수단이 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아울러 정부가 투자해 개발한 공공기술은 이전할 수 있다는 조항도 어젠다에 포함시켰다."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는 한국 수석대표로 활약했다.

"그때 관건은 GDP 2만불에 OECD 국가인 한국에 선진국의 의무를 씌우려는 상황을 피해가는 거였다. 미리 치고 나갔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30% 탄소배출량 절감하겠다. 단, 자율적으로 하겠다고.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해도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진국들의 저항이 컸을 텐데.

"당연하다. 그래서 답했다. 너희들이 100년 전부터 뿜어낸 이산화탄소를 우리는 1970년대나 되어서야 뿜어내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너희들과 똑같이 법적인 의무를 지어야 하느냐고."

◆기후를 어떻게 변화시켜?

―국제무대는 치열한데 정작 한국에선 환경 이슈가 주목받지 못한다.

"외교부 동료들도 내가 아무도 관심 없는 환경에 매달리니 그러다 과장도 못한다고 놀리더라.(웃음)"

―성균관대 경제학과 4학년 시절 외무고시(10회)에 합격했다. 정통엘리트 코스를 밟지는 않았다.

"환경에 미치는 바람에…. 외교관이 협상만 해야 하는데 협상대상인 환경에 빠졌으니, 형사가 피의자와 사랑에 빠진 격이었다. 환경 공감대도 외교부에 별로 없었다. 어떤 간부는 내가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러 간다고 하자 '기후변화? 기후를 어떻게 변화시켜?' 하시더라.(웃음)"

―유엔 국장 자리에 130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갔다. 유엔은 좋은 직장인가.

"유엔은 '뭘 하러 가느냐'가 중요한 직장이다. 미쳐야 재미있다. 단순히 잡(job)으로 들어오면 지루하고 맥 빠지는 곳이다."

―국내에 팬클럽이 있다던데.

"국제회의에서 알게 된 학자들, NGO 운동가들, 대학생들 모임인데 방콕서 출장나오면 꼭 불러주신다. 그중엔 유명 법률회사 다니면서 휴가 받아 기후변화회의에 참여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그런 사람들이 아직은 소수다.

"환경불감증, 안타깝다. 일본은 소득이 우리의 3배인데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우리와 같다. 우리는 무조건 큰 냉장고, 큰 TV, 큰 평수의 아파트를 원한다. 연간 에너지 수입량이 1400억달러다. 이산화탄소는 에너지 안보의 문제다."

―국민들의 환경의식을 고무시킬 방법이 있을까.

"정부의 강력한 리드(lead)가 선행돼야 한다. 기업이 환경을 그린오션으로 보고 투자할 수 있게 독려해야 한다. 시민들이 자가용 대신 지하철, 버스, 자전거를 타게 유도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전국을 KTX화해야 한다. 광화문에서 분당·일산으로 직행하는 고속지하철을 만들면 도로 위 자동차 수가 확 줄어든다. 그로 인해 전국에 줄어들 휘발유 양을 계산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