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지, 구체적 프로그램별로 논쟁해야

복지국가 논쟁이 무상 복지에서 출발해 '보편적 복지냐 선별 복지냐'에 이어 복지 재원 조달까지 번졌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야 간, 보수·진보 간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 소모적인 양상이 된 느낌이다. 이런 식이라면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까지 논쟁만 거듭하다가 정작 국민 복지 증진은 무위로 끝날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지 논쟁이 왜 생산적인 정책 대결로 이어지지 못할까. 무엇보다 한국 상황에 대한 인식의 격차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은 경제성장률만 둔화된 것이 아니라 소득 분배구조의 악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비정규직이 증가되고 영세 자영자의 부진 등으로 중산층은 얇아지고 빈곤층이 증가하는 양극화 현상이 진행됐다. 2008년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도 대기업과 수출 기업은 괄목할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서민경기는 여전히 썰렁하다. 이명박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 통합과 친(親)서민정책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포퓰리즘'이란 정반대의 시각이 있다.

우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지출은 2010년에 100조원을 넘어 GDP 대비 9.0%에 이르렀다. OECD 국가의 평균 복지 지출비율 20%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노인 인구 11%라는 복지 수요를 감안하면 대체로 선진국의 3분의 2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직도 복지 지출이 부족한 것은 틀림없지만 최근 20년간 한국의 복지 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빨랐다는 점에서 속도 측면은 높은 평가가 필요하다.

사회보험제도의 사각지대와 복지 수요의 증가도 우리 복지의 현주소를 진단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립되어 있다. 하지만 보험료 납입 능력이 없는 상당수 국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건강보험의 경우 본인 부담과 비급여 부분의 존재로 보장률에 대한 시비가 있고,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 요구도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거대담론의 탁상논쟁보다 구체적인 복지 프로그램별로 국가 책임의 적정선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복지는 이상적인 목표가 있어도 이를 충당할 재원 조달 계획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는 2050년에는 복지 확충이 없어도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은 GDP의 2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돼 조세와 사회보험료 부담 증가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복지 확충까지 고려하면 재원 조달의 한계에 봉착할 우려까지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형평성이 결여되거나 효율성이 낮은 복지제도에 대한 과감한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재정 악화가 발등의 불인 건강보험은 보장성 강화와 함께 과잉 진료를 유발할 수 있는 시스템 개혁이 시급하고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과 국민연금의 형평성도 높여야 한다. 효율적이고 누수 없는 복지 전달체계의 확립도 필요하다.

성장과 복지의 선(善)순환성이 극대화되는 새로운 패러다임 없이 복지의 일방적 확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공유지(共有地)의 비극'에서 보듯이 복지 확대는 비능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복지 논쟁으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야 한다.